이상면 천지일보 편집인.
이상면 천지일보 편집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이다. 당나라(측천무후)때 동방규의 시 ‘소군원의 호지무화초’에서 비롯돼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의 입에서 회자되곤 한다. 흔히 좋은 시절이 왔지만 상황과 처지가 녹록지만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러하나 분명한 것은 ‘봄이 왔다’는 사실에 필자는 초점을 맞추고 싶다.

지금으로부터 38년 전 1984년 3월 14일이 찾아왔고, 세월이 지나 오늘에 이르렀지만 38년 전 그날이 갖는 의미를 아는 이가 있을까.

거두절미하고 그날은 대 갑자년 ‘우주일주의 해’ 즉, 동방의 에덴이 회복되는 첫해로 구원의 처소인 증거장막성전(證據帳幕聖殿) 곧 새 하늘 새 땅이 약속대로 이 땅에 창조된 날이다.

그날은 이천년 전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먹는 날이며, 피를 먹고 죄 사함 받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육천년 만에 비로소 열린 날이다.

그날은 하늘이 열린 개국(開國)이요, 개천(開天)이요, 창세(創世)니, 생명이 찾아왔고 봄이 온 것이다.

춘래불사춘이라 하듯, 세상의 종교는 부패하고 병들었고, 세상 정치는 부패한 종교로 인해 함께 온 세상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됐지만, 분명한 것은 생명의 ‘참 봄’이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봄만 기다릴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참 봄(生命)을 기다렸어야 했고, 그 참 봄이 부지불식간에 내 곁에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이라 하듯, 내가 참으로 알 때 비로소 보인다 했으니 그저 무지(無知)가 한스러울 뿐이다.

봄 ‘춘(春)’, 이 春자를 파자하면, 석 三, 사람 人, 날 日로 구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서(계 3:12)에 보면, ‘이기는 자’가 등장하고, 그가 약속대로 이겼을 때 하나님과 예수님과 천국이라는 세 존재가 이기는 자라는 한 사람에게 임해 올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같은 계시록 12장 5~11에서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한 아이(이긴 자)가 용의 무리와 싸워 이김으로 창 6장에서 죄로 떠나가신 하나님이 육천년 만에 이긴 자와 함께하는 날이 찾아왔다. 이것이 구원의 처소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창조되는 순간이며 비로소 구원의 역사가 시작됨을 확인할 수 있다.

인류가 죄 아래 갇혀 죽어갈 때 십승지(十勝地, 십자가의 도 즉, 어린양의 피와 살, 진리의 말씀으로 마귀와 싸워 이긴 이긴 자, 非山非野 人山人海, 구원의 방주)라는 피할 곳을 열어주신 것이다.

여기서 이 아이(童)가 이김으로 ‘이긴 자’가 됐으니, 곧 예수님이 약속하신 약속의 목자요 하늘이 때가 되어 정한 천택지인(天擇之人)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긴 자에겐 약속대로 하나님이 임해와 함께하니,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고 이긴 자에겐 하나님 곧 생명이 함께하니 참 봄(生命)이 온 게 분명하다.

사망이 생명에 삼킨바 되는 순간이며 창조주 하나님이 긴 세월을 지나 드디어 이 땅에 한 목자와 하나 돼 마지막 발악을 하는 사망을 멸하고 생명의 새 시대를 완성지어 가고 있다.

이 일이 봄 춘자에 담긴 비밀이었으며, 오늘날 그 비밀이 이뤄졌으니 육천 년 긴긴 세월을 지나 이렇게 참 봄이 지구촌에 찾아온 것이다.

이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고 대문마다 붙여져 그토록 갈망해오던 ‘입춘대길(立春大吉)’이며, 이제 이뤄져 큰 복이 찾아왔다.

개천과 개국과 창세라는 이름은 있어 왔지만, 오늘날 비로소 그 이름값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모습이 전부며 온전하다 여겨왔겠지만 실상은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아 온 질긴 세월이었다.

이 같은 사실조차 모른 채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 얼마나 무지했고 교만했던가. 그것은 악(마귀)의 성질을 가지고 태어나 마귀의 형상을 지닌 채 긴긴 세월 마귀에게 종노릇하며 세뇌된 채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원래 모습은 창조주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이었으며 천지만물까지 복종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호시절(好時節)이 거저 온 게 아니다.

천택지인 곧 이긴 자의 희생 없이 된 게 없으니, 여기까지 달려온 그 길은 ‘사즉생(死卽生)’의 길이었음을 지나온 흔적이 기억하고 또 증명하고 있다.

이천년 전 예수 초림의 역사도 당시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었다.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재림의 때 오늘 또한 “믿음 가진 자를 볼 수 없다”고 단언하지 않았던가.

노아 때와 롯 때 같은 때가 바로 지금의 때라 했다면, 모두가 멸망 받을 때는 반드시 구원의 방주(처소) 또한 나타났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녕 그렇다면 모두가 멸망 받을 때 살아남은 자는 과연 몇이나 됐었던 가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 초림이 인류의 기원(西紀)이 됐지만 당시는 무시했고 이젠 온 세계가 통용하고 있다. 예수 재림 즉, 신천기(新天紀) 역시 이 시대는 멸시 천대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몇 날이 지나 모두가 인정하게 될 것이지만, 그 땐 이미 지난 시대와는 달리 돌이킬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힘주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시대는 오늘이라는 장래와 기약이 남아 있었으니 구원의 여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때는 육천년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이 완성되고, 완성되니 마귀의 통치시대를 끝내고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게 된다. 나아가 천택지인을 통해 씨 뿌린 밭에서 추수하고 인친 새 피조물들로 창조한 새 하늘 새 땅에 임해 왔으니 세상은 비로소 영원한 생명의 시대가 열렸고 동방의 에덴이 회복되고 있음을 잊지 말라.

이제 지상만민은 추수하고 인 쳐 새 나라 새 민족 12지파를 창조했고, 곧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핑계치 못할 것이다.

격암(格菴) 남사고가 미리 말한 “태고이후 초락도 사말생초 신천지(太古以後 初樂道 死末生初 新天地)”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천지일보 2021.3.14
ⓒ천지일보 2021.3.14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