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5억원에 팔린 비플의 작품 에브리데이즈: 첫 5000일 (출처: 크리스티 홈페이지 캡처)
785억원에 팔린 비플의 작품 에브리데이즈: 첫 5000일 (출처: 크리스티 홈페이지 캡처)

[천지일보=이솜 기자] 최근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토큰) 등 암호화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그림이 거대한 액수로 거래되며 미술 시장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에서는 ‘비플(Beeple)’로도 알려진 디지털 아티스트 마이크 윈켈만의 NFT 작품 ‘에브리데이즈: 첫 5000일(Everydays-The First 5000 Days)’이 6930만달러(약 783억원)에 낙찰됐다.

미 IT매체 더 버지는 비플이 소셜 채널에 걸쳐 250만명의 팔로워 등 대규모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점, 그가 14년째 ‘에브리데이즈’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매일 새로운 디지털 작품을 만들고 있는 점, NFT 가치가 지난 한 달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한 점 등 이번 작품의 인기 이유를 분석했다. 이번 작품은 비플이 매일 올린 모든 이미지들의 콜라주로 루이비통, 저스틴 비버, 케이티 페리 등 팝스타들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다.

윈켈만은 “이제 디지털 작품을 수집할 방법이 생겼다”며 “나는 이것을 예술 역사의 다음 장으로 본다”고 말했다.

◆NFT는 무엇인가

NFT는 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콘텐츠에 별도의 고유한 인식 값을 부여한 것이다. 한 마디로 복제가 불가능한 디지털 소유권 인증서라고 볼 수 있다. 인기 있는 NFT 형태로는 JPG, GIF, 비디오, 트윗 등이 있지만 실제로 아티스트가 독특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모든 디지털 자산, 기사나 이벤트 티켓도 NFT가 될 수 있다. 이는 작품의 진위, 소유권을 입증할 수 있어 투자 대상이 되는 동시에 미술 시장에서 영향력이 확대하는 양상이다. 또한 예술가, 음악가, 인플루언서, 스포츠 기업 등은 이전에 저렴하거나 무료였던 디지털 상품을 수익화하기 위해서도 NFT를 사용하고 있다.

NFT를 구입하면 소유자는 디지털 자산을 원하는 대로 재판매, 배포 또는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다. 블록체인 은행인 걸프펄 공동창업자 시단 고란에 따르면 유일한 주의사항은 아티스트가 NFT 코드에 제한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어 이 자산이 특정 플랫폼에서는 나타날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NFT 코드는 서버, 브라우저 또는 플랫폼에서 토큰을 인증하는 생성자의 서명이 있어 분산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NFT를 호스팅할 책임이 있는 기업은 없다. 예를 들어 NFT가 콘서트 티켓으로 만들어진 경우, 티켓마스터와 같은 티켓 판매 플랫폼을 통해 해당 티켓을 확인할 필요가 없으며 이는 어떤 블록체인을 통해서도 검증이 가능하다.

NFT를 사고파는 세 개의 주요 시장 오픈씨, 라리블, 니프티 게이트웨이는 이더리움에서 운영된다.

앞서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아내이자 가수인 그라임스가 NFT로 경매에 내놓은 디지털 이미지가 이달 초 580만 달러에 팔렸으며 지난 8일에는 트위터 창업자이자 CEO인 잭 도시가 자선 경매에 자신의 첫 트윗을 NFT로 팔고 있다. 이날까지 해당 트윗의 입찰가는 250만 달러에 달했다. 이번 달 가상 운동화 브랜드인 RTFKT Studios는 600쌍의 NFT 제품을 7분 만에 310만 달러로 팔았다.

록 밴드 킹스 오브 레온은 디지털 토큰 시리즈로 앨범을 발매한 최초의 그룹이다. 앨범 ‘When You See Yourself’는 지난 주 3개의 NFT 형식으로 발매됐다. 가격은 50달러다.

NFT 기술은 2010년대 중반부터 존재해왔지만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 가치가 처음 오르기 시작한 2017년, 고양이의 블록체인 인증 이미지인 디퍼랩스의 크립토키티스(CryptoKitties)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지금은 암호화폐 가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투자자 중 일부는 NFT를 사들이고 있다.

NYT는 누구나 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붙일 수 있지만 이탈리아 화가 마우리치오 캣텔란의 ‘코미디언’이 아닌 것처럼, 누구나 비플의 이번 작품을 다운받아 사본을 소유할 수 있지만 블록체인 검증 없이는 작품을 소유할 수 없다며 미술계는 이런 판매 장르에 익숙하다고 설명했다.

NFT 분석 플랫폼 논펀지블닷컴(Nonfungible.com)과 BNP파리바 (BNP Paribas)산하 시장 분석 기관인 라뜰리에 (L'Atelier)가 발표한 2020년 NFT 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NFT 시장의 가치는 2억 5천만 달러 수준으로 늘면서 299% 성장했다.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 (출처: 비플 트위터 캡처)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 (출처: 비플 트위터 캡처)

◆예술? 투기? 미술계 논란… 환경·보안 문제도

일부 예술계에서는 NFT가 일시적 유행 이상으로 보고 있는데, 이 기술이 정품 인증을 둘러싼 오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블록체인 아트기업 베리사트의 설립자이자 CEO인 로버트 노튼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우리는 예술가 재단이 작품 인증을 자체적으로 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목격했다”며 “블록체인의 투명성은 앞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속적인 방법임을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NFT 콘텐츠가 ‘예술’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투기이자 돈을 버는 방법일 뿐 예술 자체와는 관계가 없다는 설명이다.

중국 현대 미술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실뱅 레비는 NYT에 비플과 크립토펑스의 최신 가격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만한 소프트웨어가 머릿속에 없다”며 “예술은 더 이상 사물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예술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이는 또한 전부터 이어진 예술 작품의 진정성과 귀속성의 가치에 대한 논쟁에도 불을 붙였다.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전기 작가인 블레이크 고프닉은 SCMP에 “NFT는 흥미롭지만 혁신적이진 않다”며 “(NFT는) 뭔가를 뒤흔드는 게 아닌 전통 예술 세계의 최악의 측면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이다. 작가의 손에 서명된 예술 작품에 사본과 구별되는 마법의 무언가가 있다는 개념은 극도로 보수적이고 구식”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워홀도 작품의 귀속성을 조롱하며 1966년 빌리지 보이스 잡지에 그가 서명하고 진짜 자신의 것으로 증명된 임의의 물건을 가져와보라는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고프닉은 이에 대해 “워홀은 서명만이 현대 미술로서 무언가를 구별할 수 있다는 어리석음에 대해 농담한 것”이라며 “윈켈만이 NFT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구식 이해라고 말하기 위해 조롱하는 게임을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매 회사들에게는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크리스티의 NFT 경매 담당 노아 데이비스는 미술품 수집 커뮤니티의 전통적 요소 가운데 에브리데이스에 대한 회의론이 절대적으로 존재했으며 너무 도전적이라는 이유로 그의 작품 초안을 거부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NFT가) 전통적인 미술 경매 모델을 교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 “(NFT는) 경매 회사들이 물리적 예술품을 보관, 취급, 카달로그화, 사진 촬영 및 보험에 드는 비용을 전혀 부담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했으며 이는 경매 회사들에게 정말 매력적인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데이비스는 “이것(NFT)이 경매에서 그림과 조각품을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NYT는 궁극적으로 NFT는 예술작품을 인증하는 데 사용되는 기술이라며 작품이 예술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감상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전했다.

한편 암호화폐 및 NFT 거래를 위한 시스템은 환경적 관점에서 볼 때 대규모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이날 디지데이는 지적했다. 고란은 암호화폐 거래 한 건이 비자 거래 70만건이나 되는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밝혔다. 고란은 디지데이에 “탄소배출량을 빼앗아도 우리가 비자를 비트코인과 같은 시스템으로 옮기면 여전히 지구를 1.5도 이상 뜨겁게 달구게 될 것”이라며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열기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 문제도 있다. 디지털 자산에 제작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NFT를 생성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NFT는 영구적 저장 솔루션도 없다. 블록체인 기업 마케팅통신업체인 세로토닌의 마이클 일스 공동 창업자는 디지데이에 “NFT 구입 후 콘텐츠가 블록체인에 저장되지 않고 서버에 저장 돼 부주의로 삭제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