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궁지에 몰고 남북대화 건너뛰기 전략
北 녹취록 공개 위협..존재 여부 주목

(서울=연합뉴스) 북한이 8일 만에 남북 비밀접촉 내용을 추가로 공개한 것은 이 문제를 '진실게임'으로 몰고 가 우리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노골적인 의도로 보인다.

북측은 1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문답에 이어 9일 비밀접촉에 직접 참석했다는 국방위 정책국 대표의 문답 형식을 통해 자기측 주장이 담긴 비밀접촉 내용을 재차 폭로했다.

북측의 1차 공개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해명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직접 끌어들였다.

비밀접촉에 나섰던 김천식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이 "비밀접촉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시와 인준에 의해 마련됐다"고 말했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이를 통해 남측이 정상회담 논의를 위해 먼저 접촉을 제안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북측이 먼저 접촉을 제안했다고 밝혔었다.

정부는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접촉이 아니라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기 위한 자리라고 해명했지만, 북측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사과와 시인을 요구했다고 한데 대해서도 남측이 절충안을 제시했다고 재차 언급했다. "북측에서 보면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보면 사과로 간주되는 절충안이라도 내놓자고 남측이 빌붙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정상회담과 관련한 구체적 일정을 제시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북측은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명백히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남측이 대통령의 의견을 반영해 작성했다는 일정계획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비밀접촉을 한 번 더 갖고 장관급회담을 연후 6월 판문점, 8월 평양, 내년 3월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에 정상회담을 하자는 시간표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돈통부에 대해서는 "김태효 비서관과 국가정보원 홍창화 국장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라면서 "김태효 비서관의 지시에 따라 홍창화 국장이 트렁크에서 돈봉투를 꺼내 들자 김 비서관이 그것을 받아 우리 손에 쥐여주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가(북측) 즉시 쳐 던지자 김 비서관의 얼굴이 벌개져 안절부절못했으며, 홍 국장이 어색한 동작으로 트렁크에 황급히 돈봉투를 걷어 넣었다"고 언급했다.

북측은 1차 공개 때와 마찬가지로 남측이 "우는소리를 했다", "비굴하게 놀아댔다" 등의 원색적인 표현으로 정부를 압박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북측이 녹취록을 공개할 수 있다고 밝힌 대목이다. 우리 정부는 녹취록이 없다고 밝혔었다.

북측은 "끝끝내 진실을 밝히기를 거부하고 동족 기만과 모략 날조에 매달린다면 우리는 불가피하게 접촉과정에 대한 녹음기록을 만천하에 공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녹취록이 존재한다면 이는 북측이 우리 대표단 몰래 했을 수 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3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내가 대북 특사ㆍ밀사를 할 때도 녹취록을 맡는 사람이 있었다"면서 "녹취록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북측의 주장에 정부는 이미 1차 폭로 때 입장을 밝혔다며 공식적 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북측이 공언대로 추가로 녹취록까지 공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남북 비밀접촉은 다시 한번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북측의 추가 공개는 1차 공개로 나름대로 '재미를 봤다'고 평가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1차 공개 이후 국회 공방 등을 통해 우리 정부가 난처한 입장에 처한 상황을 즐기는 셈이다.

'남북대화-북미대화-6자회담'으로 이어지는 3단계 안에서 남북대화를 건너뛰기 위한 전략적 포석도 깔렸다는 분석이다.

비밀접촉이 남측의 태도로 결렬됐다며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는 한편 자신들도 할 만큼 했다는 주장을 미국과 중국에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추가 공개를 통해 우리 정부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고, 남남갈등을 부채질해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과 기조를 흔들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의 공개 배경에 대해 "북측 내부에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우리 내부의 갈등을 조장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켜 흔들려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그동안 남한 정부의 해명과 북측이 실무접촉 대표들을 숙청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자극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런 식의 공방으로는 남북 모두가 패자가 되는 만큼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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