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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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매너를 무척 강조하는 시대이다. 매너(manner)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1. (일의) 방식 2. (사람의) 태도 3. (특정 사회 문화의) 예의’라고 나온다.

셰즈 페르세(chaise percee)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태양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가 회의를 주도하거나 손님을 맞이할 때 앉아 있던 의자였다. 의자는 호화스러운 장식을 하고 있었지만 본래의 용도는 변기였다. 말하자면 예전에는 지금처럼 혼자 비공개로 용변을 보는 것이 매너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동양에도 비슷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이 있다. ‘그 집안 옛날에는 방귀 좀 뀌었지’하는 말이다.

물론 요즘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만 예전에 힘 있는 사람은 공개적으로 방귀 뀌는 것을 가리지 않았다는 뜻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중세시대 지배계층은 피지배계층과의 차별을 위해서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지키면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계급 관계를 명확히 하고 자신들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매너라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매너는 그것을 따라하는 피지배계층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숙녀를 앞세우는 ‘rady first’ 문화도 시작은 암살이 많던 시대에 열린 문 뒤에 암살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므로 여종을 먼저 들여보낸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건배 문화도 사실은 독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잔을 부딪쳐 흔듦으로써 독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모자를 벗는 것도 예전에 머리를 보호하던 투구를 벗음으로써 목숨도 내어놓을 정도의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지배계층의 이런 이유 있는 행동들을 피지배계층이 무조건 따라하는데서 매너가 생긴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무조건적인 매너보다는 상대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행동이 ‘진짜 매너’가 아닐까 싶다.

진짜 매너는 상대방이 편안하도록 해주는 것이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상대의 감정에 공감해주는 것이다. 가끔 장례식장에 가서 보면 분위기가 참 다르다. 진짜 호상일 경우에는 장례식장이 무겁지만은 않다. 그런데 상주한테 얼마나 힘들겠냐면서 위로만 하려고 든다면 상주는 자신이 그렇게 크게 슬퍼하지 않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어 불편할 수도 있다. 반대로 무척 무겁고 슬퍼하는 곳에 가서 그만하면 ‘호상’인 것 아니냐는 식의 어투는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 때에 따라서는 100세에 임종을 해도 상황에 따라서 아쉬움이 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집이 남향이라서 겨울에 빛이 너무 깊게 들어와서 최근에 커튼을 달았다. 얇지만 분위기에 변화를 주니 기분이 산뜻하고 좋아졌다. 최근에, 지인 중에 한 분이 놀러 온 적이 있는데 이렇게 얇은 커튼을 하면 어떻게 하냐면서 타박을 했다.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잘못했다 잘했다 할 수는 없지만 상대의 감정을 무시한 이런 조언은 매너가 아님에 틀림이 없다. 갑자기 그 한마디에 커튼을 바꿀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진짜 매너는 상대나 자신,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기왕이면 형식적인 매너에 얽매이지 말고 진짜 매너를 가질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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