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AP/뉴시스] 영국 왕실에서 독립한 해리 왕자와 부인 마클 왕자비의 인터뷰가 영국과 미국을 강타했다. 마클 왕자비의 발언은 8일(현지시간) 영국 주요 매체의 1면을 장식했다. 사진은 2018년 7월 영국 왕실 행사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해리 왕자 부부,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모습.
[런던=AP/뉴시스] 영국 왕실에서 독립한 해리 왕자와 부인 마클 왕자비의 인터뷰가 영국과 미국을 강타했다. 마클 왕자비의 발언은 8일(현지시간) 영국 주요 매체의 1면을 장식했다. 사진은 2018년 7월 영국 왕실 행사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해리 왕자 부부,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모습.

“인종 문제 겉으로 부각 안 돼”

英 흑인 75% “인권 차별 느껴”

입헌군주제 존재 지적까지

“英군주제는 백인주의 상징”

[천지일보=이솜 기자]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왕자비가 왕실 내 인종차별을 폭로하자 왕실을 넘어 영국 사회 전반의 인종차별에 대한 관심이 몰리고 있다.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메건 마클의 인터뷰가 영국에서 인종에 대한 불편한 스포트라이트를 던지다’라는 제목으로 그간 영국에서 부각되지 않았던 인종차별 문제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짚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여론조사기업 클리어뷰리서치의 케니 이마피든 국장은 WSJ에 “미국에서는 (인종문제에 관한) 역사가 있고, 사회적 논의의 전통이 영국보다 길다”며 “영국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겉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은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믿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간 이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없었다 해도 실제 영국 사회에 인종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란 설명이다.

메건 왕자비는 전날 오프라 윈프리가 진행한 미 CBS방송 인터뷰에서 왕실 구성원이 이 부부의 아들인 아치의 피부색이 얼마나 어두울지에 대한 우려를 했다고 밝혔고, 해리 왕자는 인종차별이 왕실과 결별하도록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답했다.

메건 왕자비는 흑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영국 왕실의 첫 흑인 구성원이었다.

이날 미 CNN방송도 사설을 통해 마클의 폭탄선언은 오늘날 영국과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한 훌륭한 교훈이라고 전했다. 사설은 인터뷰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마클이 너무 우울해져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다는 발언이었다며 “불행하게도, 이는 백인 기관에서 항해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흑인들에게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설은 영국의 입헌군주제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했다. 군주제는 백인우월주의의 상징 중 하나로, 이전 식민지에서 훔친 부와 보석으로 둘러싸인 백인 엘리트들을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는 주장이다.

워싱턴포스트(WP)도 과거 해리 왕자의 할아버지 필립 공과 아버지 찰스 왕세자 등 왕실 구성원들이 인종차별적 언행으로 비난을 받았던 사건과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들이 마클에 대해 인종차별적 제목을 일상적으로 게재한 일들을 열거하며 영국의 많은 시청자와 팬들에게 이번 폭로는 실망스럽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그로스 에모리 교수는 WP에 “사실상 영국 왕정은 대서양 횡단 노예 무역에서 근본적 역할을 했다. 16~19세기 초까지 노예를 사고팔았고 20세기까지 전 세계에 걸쳐 식민지 지배를 해 왔다”며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흑인의 몸과 피로 그들의 제국을 건설했다. 나는 인종차별의 오랜 유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고 지적했다.

작년 입소스 모리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의 89%가 영국이 인종차별적이라고 느끼지 않는다고 조사됐다. 그러나 영국 의회 인권위원회가 의뢰한 보고서에 따르면 흑인의 75% 이상이 백인들에 비해 자신의 인권이 동등하게 보호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인구의 약 3%가 흑인이지만 비즈니스 인 커뮤니티 조사에 따르면 흑인은 영국 내 기업 간부나 고위 공직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5%에 불과했다.

그러나 비키 포드 아동 담당 정무차관은 왕실의 인종차별 논란과 관련 BBC 인터뷰에서 “인종차별은 우리 사회에 설 자리가 없다”며 영국 내 인종차별 존재조차 부인했다.

야당인 노동당 의원들은 이에 대한 왕실 조사를 촉구했다. 노동당 키어 스타머 대표는 “이런 인종차별 경험은 21세기 영국에서 여전히 너무 만연해 있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더 예민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왕실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할 지에 대한 논의는 거부하고 “항상 여왕을 가장 존경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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