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던 중 눈을 감고 있다. ⓒ천지일보 2021.3.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던 중 눈을 감고 있다. ⓒ천지일보 2021.3.4

27년 검사생활 그만둔 윤석열

文대통령 총애 속 총장 시작

조국 등 정권과 갈등에 반전

검찰 존폐 위기에 사직 승부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기 시작 589일 만에 직을 던졌다. 한때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우리 총장님” 소리를 듣던 윤 총장이 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났는지, 윤 총장이 퇴임하기까지 매우 중요했던 3가지 사항을 되돌아봤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총장은 지난 4일 대검 청사 현관 앞에서 “저는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 한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윤 총장은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저는 우리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4시간 뒤쯤인 오후 5시 50분엔 퇴임식 없이 검사 인생 27년의 마지막 퇴근길에 올랐다. 그는 “임기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먼저 나가게 돼 송구한 마음이지만 부득이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며 “27년 공직생활 동안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후회 없이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윤 총장은 왜 부득이한 선택으로 임기 142일을 남긴 채 물러나게 됐을까.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입시 비리 및 사모펀드, 감찰 무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8일 오전 1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천지일보 2020.5.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입시 비리 및 사모펀드, 감찰 무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5월 8일 오전 1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천지일보 2020.5.8

◆조국: “우리 총장님”에서 ‘배신자’된 계기

과거 통상적인 인사 흐름이었다면 윤 총장은 검찰총장에 오르지 못했다. 그의 사법연수원 기수는 23기로, 전임 문무일 전 검찰총장(18기)보다 무려 다섯 기수나 아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총애’라고 할 만큼 윤 총장을 높게 평가했다.

애초에 윤 총장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할 때도 고검장급 대우를 받던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일반 검사장으로 대우를 낮춰 윤 총장을 임명한 것이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 윤 총장은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검사’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윤 총장이 처음 대중에게 각인됐던 일과 무관치 않다.

2013년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는 박근혜 정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았다. 이후 여주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도 수사팀을 계속 이끌었으나, 그해 10월 전격적으로 팀장에서 배제됐다.

이후 윤 지청장은 같은 달 서울고검 국회 국정감사에서 상관인 조영곤 중앙지검장을 향해 ‘수사외압이 있었다’ ‘검사장을 모시고 갈 수 없다’는 등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당연히 당시 여당이던 국민의힘의 전신 새누리당 의원들은 윤 지청장을 비판했고, 당시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은 윤 지청장을 감쌌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이 일로 윤 총장은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고, 한동안 좌천됐다는 평가를 받고 지내왔다. 그러나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특검팀에 수사팀장으로 합류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윤 총장을 포함한 특검팀은 국정농단 수사를 성공리에 마쳤고, 박근혜 정권 심판론을 바탕으로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여당은 윤 총장에 대해 ‘우리 편’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 2019년 7월 25일 검찰총장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나온 “우리 총장님”이란 문 대통령의 발언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총장 취임 직후 이뤄진 검찰 인사에서 한동훈 검사장 등 ‘윤석열 라인’이 대거 약진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야당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당시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윤 후보자는 야권 인사들을 향한 강압적인 수사와 압수수색 등으로 자신이 ‘문재인 사람’임을 몸소 보여줬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성은 날 샌 지 오래”라고 비판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자녀 입시비리, 사모펀드 의혹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23일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5일 결심 공판에서 정 교수에게 징역 7년에 벌금 9억원, 추징금 약 1억 6462만원을 구형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정 교수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0.12.2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자녀 입시비리, 사모펀드 의혹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난해 12월 23일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5일 결심 공판에서 정 교수에게 징역 7년에 벌금 9억원, 추징금 약 1억 6462만원을 구형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정 교수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0.12.23

하지만 그 환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내정한 지 얼마 안 돼 윤 총장은 압수수색을 포함해 조 후보자에 대한 대대적인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윤 총장 취임 한 달 만의 일이었다.

윤 총장은 거침없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끝나기 직전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자녀 입시 관련 표창장 위조 혐의로 전격 기소했다.

정 교수의 기소뿐만 아니라 조 장관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연일 쏟아졌고, 전국은 조 장관을 옹호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뉜 집회로 들끓었다. 결국 조 장관은 장관 임명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인 2019년 10월 14일 장관직을 사퇴했다.

이 시점부터 윤 총장은 정부·여당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이로 인해 같은 해 열린 대검 국정감사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불과 약 석 달 전에 윤 총장을 치켜세우던 민주당이 윤 총장을 지적하고, 윤 총장을 낙마시키려던 당시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오히려 윤 총장을 감쌌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현판식에 참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2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현판식에 참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21

◆추미애: ‘대선후보 윤석열’을 이끈 추진력

조 전 장관 후임은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었다. 조 전 장관은 사임하면서 “더 강한 장관이 온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추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단행한 검찰 인사에서 윤 총장 라인을 상당수 좌천시켰다.

추 장관은 해당 인사에서 윤 총장 의견을 일절 반영하지 않았다. 불과 6개월 전 윤 총장 의지대로 인사가 이뤄진 점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였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은 이제 시작이었다. 7월 추 장관은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 관련 윤 총장이 보고만 받도록 수사에서 배제하는 수사지휘를 내렸다. 헌정사상 검찰총장을 향해 2번째 발동된 수사지휘권이었다.

윤 총장은 전국검사장회의를 열어 서울고검장이 지휘하고 보고만 받는 형태를 제안하는 등 수사지휘를 피하려 했으나, 결국 굴복해 수사지휘를 수용했다.

10월엔 라인자산운용 로비 의혹 사건과 윤 총장 가족을 둘러싼 의혹 사건에 대해 역시 윤 총장을 배제하는 수사지휘가 또다시 이뤄졌다. 야당 인사에 대한 구체적인 비위 사실을 보고받고도 철저히 수사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였다. 이번에 윤 총장은 첫 수사지휘보다 더 신속하게 수사지휘를 받아들였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 측 특별변호인 이석웅(왼쪽부터), 이완규 변호사가 10일 오전 윤 총장에 대한 검사징계위원회가 열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 출석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서 윤 총장 징계 여부와 수위를 심의할 징계위를 개최한다. ⓒ천지일보 2020.12.10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 측 특별변호인 이석웅(왼쪽부터), 이완규 변호사가 지난해 12월 10일 오전 윤 총장에 대한 검사징계위원회가 열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 출석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서 윤 총장 징계 여부와 수위를 심의할 징계위를 개최한다. ⓒ천지일보 2020.12.10

하지만 윤 총장이 진짜로 순순히 수사지휘를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같은 달 22일, 대검 국정감사에서 윤 총장은 그야말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윤 총장은 “법리적으로 보면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부하라면 이런 직제를 만들 필요도 없다”며 “(명령대로 따라야 하는 부하라면) 국민 세금 거둬서 대검찰청의 방대한 시설 조직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수사지휘권은 장관이 의견을 낼 필요가 있을 때 검찰총장을 통해서 하라는 것이지, 특정 사건에서 지휘를 배제할 권한이 있느냐에 대해선 대부분 검사와 법률가가 검찰청법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있다”며 “중범죄를 저질러 중형 선고가 예상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는 것은 정말 비상식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직 총장이 이 정도로 강한 어조로 장관을 들이받는 일은 전무후무했기에 정국은 발칵 뒤집혔다. 이는 윤 총장의 징계 청구로까지 이어졌다. 검찰총장을 향한 징계 청구 역시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추 장관 취임이 2020년 1월 3일이라는 걸 상기하면, 두 사람은 추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12월까지 1년 내내 충돌한 셈이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제공: 국회) ⓒ천지일보DB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제공: 국회) ⓒ천지일보DB

이런 난리는 결과적으로 ‘정치인 윤석열’의 등장 가능성을 열어 놓는 일이 됐다.

윤 총장은 추 장관과 반목을 거듭할수록 강직한 이미지에 플러스 효과가 생기며 대선후보로서 인지도를 쌓았다. 처음엔 대선후보 집계에 드는 것조차 손사래 치던 윤 총장이었지만, 국감 때는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정치 참여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까지 하며 달라진 인식을 드러냈다.

국감 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권후보 윤석열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윤 총장은 사임을 발표한 지난 4일엔 “제가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도 제가 어떤 위치에 있던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정치선언과 다름없는 발언을 내뱉었다. 정치권은 시간의 차이만 있을뿐 윤 총장의 정치 참여를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결국 추 장관을 비롯한 정부·여당과의 갈등이 검찰총장 출신 정치인이라는 새바람을 일으킨 셈이 됐다.

[서울=뉴시스]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떠나며 꽃다발을 들고 있다. 2021.03.04.
[서울=뉴시스]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떠나며 꽃다발을 들고 있다. 2021.03.04.

◆검수완박: “소임 다하겠다”던 윤석열이 직을 던지게 하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윤 총장은 임기를 끝까지 지키려 하는 쪽이었다. 두 번의 수사지휘와 징계 청구 등 다른 총장이라면 진작 사표를 썼을 상황에도 윤 총장은 직을 유지하는 방향을 택했다.

국감에서도 윤 총장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벌어지고 나서, 4.15 총선 이후에도 더불어민주당에서 사퇴 얘기가 나왔을 때도 (문재인 대통령께선)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임기 지키며 소임 다하라고 하셨다”며 “제가 임기 동안 할 일 충실히 하는 것이 임명권자에 대한 것뿐 아니라 국민에 대한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정부와 여당이 수사와 기소가 분리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본격 추진하면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을 시도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윤 총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직을 걸겠다” “검찰총장직이 뭐가 대단하냐” 등 수사·기소 분리를 막아야 한다는 강경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를 위해 그는 검찰을 잘게 쪼갠 전문 수사청을 역제안하기도 했다.

다만 그 전에 정치 결심이 서면서 윤 총장이 확실히 정치적인 면모를 뽐낼 상황을 사퇴로써 연출한 것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검찰이 존폐기로에 놓인 시점에 윤 총장을 직을 던지는 승부수로 응수했다. 이젠 정치인 윤석열의 시간이 펼쳐질지 모두가 주목한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법원의 정직 처분 집행정지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한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 윤 총장의 응원 화환이 세워져 있다. ⓒ천지일보 2020.12.2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법원의 정직 처분 집행정지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한 지난해 12월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 윤 총장의 응원 화환이 세워져 있다. ⓒ천지일보 20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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