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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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대뜸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임기 2년을 그토록 강조하던 윤 총장의 돌연 사퇴는 정말 뜻밖이다. 그러나 최근 며칠 동안 윤 총장이 보인 언행을 보면 이미 사퇴를 앞두고 포석을 둬 왔던 셈이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발언과 마치 정치인 같은 언행은 결코 검찰총장으로서 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 총장은 이미 사퇴를 결심하고선 사퇴에 앞서 공개적인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에 대한 관심을 높인 뒤에 4일 전격 사퇴하는 수순을 밟았다. 어지간한 정치꾼보다 한 수 위의 정치행보다.

그러나 사퇴는 했지만 이대로 묻어둘 순 없는 문제가 있다. 윤 총장은 며칠 전 한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대담 인터뷰를 가졌다. 그 내용을 보면 그건 이미 정치행보였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문제를 비롯해 검찰 안팎의 문제와 국정 현안 심지어 한국 민주주의 문제까지 자신의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밝혔다. 속 시원하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러나 덜 익은 사고와 편향된 인식 게다가 검찰조직에 대한 무한 자부심으로 꽉 차 있는 듯한 ‘작심 발언’이었다. 심지어 정의의 칼을 찬 검찰이 ‘나쁜 권력’에 의해 위험에 처해 있으니 ‘국민’이 나서서 도와 달라는 식의 코미디 같은 발언은 실소를 넘어 윤 총장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몰상식 그 자체였다. 세계 어느 나라의 검찰총장이 직접 국민에게 도와달라며 언론 인터뷰를 하는 나라가 또 있다는 말인가. ‘정치적 중립성’을 목숨처럼 떠받들던 윤 총장이 직접 이런 식의 정치행보를 하리라곤 정말 몰랐다.

더 가관인 것은 지난 3일 윤석열 총장이 대구지검을 방문할 때의 모습이다. 검찰총장의 의례적인 지방청 방문이 아니었다. 언론 인터뷰가 대문짝만하게 보도된 직후 대구를 찾은 윤 총장은 말 그대로 야당의 대선후보 같은 환영을 받았다. 윤석열을 연호하는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청사 입구는 북새통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 윤석열’을 외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마치 ‘대선 출정식’ 같은 분위기였다는 것이 현지의 반응이다.

심지어 대구 시민들이 뽑은 권영진 대구시장도 직접 꽃다발을 들고 대구지검을 찾아 윤 총장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모습을 보였다. 초라하다 못해 참으로 민망한 모습이다. 역대 대구 시장이 이런 굴욕적인 모습을 보였던 때가 또 있었을까 싶다. 아무리 대구가 정치색 강한 지역이라 하더라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대구 시민들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여 야권 대선후보라도 이런 정치행보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윤 총장이 이번에 보인 일련의 행태, 이것도 정치행보가 아니라고 할 텐가. 윤석열은 이러한 정치행보를 현직 검찰총장 신분으로 해냈다. 현직 검찰총장이 이렇게 움직여도 괜찮다면, 이건 ‘나라’가 아니다. 검찰은 진짜 ‘검찰당’으로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내심 반기는 모습이다. 그동안 윤석열 총장을 감싸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외쳤던 그 국민의힘이 이번에도 덩달아 윤석열 편에 섰다. 현직 검찰총장의 정치행보에 대해 따끔한 충고는커녕 외려 정치행보가 아니라고 우긴다.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검찰 내부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검찰개혁’으로 그들의 기득권이 흔들릴 때는 전․현직들이 대거 나서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외쳐대더니 이번 윤 총장의 노골적인, 아니 대선 출정식 같은 정치행보에 대해선 대체로 침묵이다. 부끄럽다 못해 참담하다. 검찰개혁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거듭 확인하는 대목이다.

윤석열 총장은 여권 일각에서 추진하고 있는 중수청 설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검찰총장으로서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삭제하는 방안에 대해 마냥 침묵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충분히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 할 수는 있지만, 정부 기구를 재편하고 이를 법제화 하는 것은 국회의 몫이다. 그게 윤 총장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민주주의 원리요, 헌법정신이다. 반대로 검찰총장이 직을 가진 채 자신에 대한 대중적 인기를 무기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국민여론을 선동하고 정치쟁점화 시켜내면서 국회 입법권을 흔드는 것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 파괴요, 헌법정신을 짓밟는 만행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윤 총장이 자신의 행보를 마치 무슨 민주주의의 화신처럼, 거악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처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상식 밖의 언행이다.

사실 윤석열 총장은 검찰총장으로서의 신뢰를 이미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거악에 맞선다며 자신의 노골적인 정치행태를 정당화 시키려던 모습은 국민에겐 엄청난 민폐요, 후배 검사들에겐 재앙이다. 검찰조직이 정치의 수단이 되고, 검찰총장이 노골적인 정치행보를 보인다면 검찰은 이미 끝난 것이다. 법치와 정의는커녕 스스로 법치와 정의를 훼손하는 ‘민폐 조직’이 될 뿐이다. 정치를 결심했다면 검찰총장직을 먼저 내려놓았어야 했다. 그런 후에 언론과 인터뷰를 하든, 대구엘 가든 맘대로 했어야 했다. 국민을 섬긴 공직자였다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외쳤던 검찰총장이라면 당연히 그랬어야 했다. 국민을 개․돼지 수준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검찰을 ‘철밥통 지키려는 기득권 세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런 국민과 검사들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결론은 간단하다. 늦었지만 윤석열 총장의 사퇴는 다행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윤 총장은 그동안 자신이 보였던 노골적인 정치행태에 대해서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지지했던 국민에 대한 예의요, 정치적 중립을 외쳤던 후배 검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그리하여 다시는 이 땅에 ‘정치꾼’을 키우는 검찰조직이 되지 않도록, 다시는 이 땅에 ‘검찰당’이 목소리 높이는 그런 저급한 사회가 되지 않도록 엄중한 국민적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국민은 그래도 살아있으며, 역사는 그래도 전진하고 있음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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