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부산저축은행이 일으켜 놓은 소동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그들을 믿고 예금자들이 맡긴 피와 같은 돈은 눈 녹듯 사라졌다. 예금자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것이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회사 경영자들의 전형적이며 범죄적인 도덕적 해이다. 그런데 이 같은 도덕적 해이가 부산저축은행 하나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보아지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사회는 유별난 안면(顔面) 사회이며 배경과 권력이 사업의 성공을 결정한다. 이 때문에 경영자는 참다운 비즈니스 마인드에 충실한 회사 경영이 아니라 안면과 배경을 넓히고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부산저축은행 경영자들이 극명하게 보여준 행태다. 안면과 배경을 구축하는 작업은 부당하게 조성한 비자금을 뿌려서 이루어낸다. 돈은 감독기관과 감사기관에 있는 관계자들까지도 매수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렇게 해서 회사부실을 부르고 결국에는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할 것이 뻔한 일탈행위가 무책임하게 방조되는 것이다.

기업 경영은 기업 행위이자 사회구성원이 예금자로 투자자로 참여하는 사회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자의 이윤 추구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책임이 강조된다. 기업 경영자의 모럴 해저드를 극히 경계하는 까닭도 그것이다. 감독기관 감사기관은 기업 경영의 합법성을 확보하고 기업 경영자가 빠져들기 쉬운 모럴 해저드를 감시 감독할 목적으로 존재하는 제도다. 우리 사회에 국민을 감동시킬 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인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국민이 최후로 믿는 것은 기업 경영자의 양심보다도 감독기관 감사기관이다. 그런데 국민의 복리를 지켜주어야 할 이 최후의 권력 시스템이 생선 가게를 지키다 생선을 다 먹어치운 나쁜 고양이가 돼버렸으니 국민은 누구를 믿고 산단 말인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일으켜 놓은 소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부산저축은행의 로비에 포섭된 여야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국민들이 마시기에 적합한 청정 수원지가 돼주어야 할 연못의 물이 온통 흙탕물이 돼버린 것 같은 소회를 갖는다. 이들까지 필시 은행의 부실을 키운 경영자의 입이 되고 손발이 돼주었을 것이다. 그 대가로 예금자들이 맡긴 돈을 받아먹어 사욕을 채우고 배를 불렸다면 그들은 국민의 피를 빨아 먹은 도둑놈들이요 강도들이다. 그 썩은 돈을 정치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받아썼다면 그들은 썩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 돈으로 하는 정치는 썩은 정치다.

정치인은 말할 것 없고 감독기관 감사기관에 종사하는 정도의 선택받은 공복들이라면 이렇게 더러운 돈과 부정한 돈을 받고 매수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직무수행에 필요한 돈은 정부에서 충분히 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됐지 뭐가 모자라 자칫 패가망신할 부정한 돈을 받아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들에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민초들의 고통을 생각해보라는 얘기까지는 어차피 귀에 들리지 않을 소리이므로 하고 싶지가 않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 기업인들은 자신들의 사업을 정당한 사업 절차에 따라 비즈니스의 영역 안에서 하려 하지 않고 권력기관과 유력자들에 기대어 풀려 하는가. 그 이유는 흔히 불필요한 규제가 많은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그 말은 맞다. 그렇지만 꼭 불필요한 규제가 기업행위를 옥죄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규제가 걸려있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규제가 없더라도 소관부처, 감독기관의 관계자가 일을 비틀고 심술을 부리면 될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압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기관과 유력자를 기업인들은 온갖 유혹의 미끼를 던지면서 찾게 된다. 사욕과 탐욕이 있는 사람은 그 미끼에 걸려든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권력 만능 사회다. 권력 만능이 권력과 기업과의 유착을 부른다. 공정 사회 건설을 부르짖지만 그 점은 변한 것이 없다. 권력 만능 사회에서 권력의 힘은 안 될 성 부른 일도 얼마든지 편법으로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기업인은 이른바 요로에 두루 잘 통하는 마당발이 되려고 애를 쓴다. 준법(遵法) 경영보다 일에 대한 열정이 앞서는 한국의 기업인이 돈이면 개척되는 이 쉬운 길을 놓치겠는가. 한국 기업인이 가진 ‘불가능은 없다’는 신화는 이같이 권력과 유착하는 능력까지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준법 경영을 무시하고 정상적인 기업경영에서 일탈한 권력과의 유착이 불행한 결말로 귀착된 사례를 우리는 부산저축은행의 경우까지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니다. 이 같은 기업 경영 방식과 기업 환경은 더 말할 것 없이 깨끗이 청산돼야 마땅한 고질이지만 항상 탁류가 흐르는 황하(黃河)와 같이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니 이를 어찌 해야 하나.

부산저축은행이 일으킨 소동에서 우리 사회의 부패가 거의 막장까지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같은 고질을 수술하지 않고서 우리가 더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말 허망한 일이 될 것이다. 부패는 사회라는 유기체의 종말을 재촉하는 악성 종양이다. 이 악성 종양은 지도층의 모럴 해저드를 먹고 자라며 확산된다. 부산저축은행의 비리에 감독기관과 감사기관의 고위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이 줄줄이 엮이어 거론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 사회 지도층의 모럴 해저드가 총제적인 것이라는 우려와 걱정을 국민이 갖기에 충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무슨 말을 한들 국민이 신뢰하고 따르겠는가.

부패와 유착은 남의 정당한 기회를 빼앗는 것일 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위와 아래가 다 썩어 버렸다고 국민이 생각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어떻든 말 없는 국민은 항상 잔잔한 바다가 아니라는 점만은 꼭 명심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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