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포스터(제공: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포스터(제공: 판씨네마)

‘이민 2세’ 감독의 자전적 영화

1980년대 이민자의 삶 그려내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에 주목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물만 있으면 알아서 자라고 병충의 피해도 적다. 거기다 음식에 넣으면 풍미가 깊어진다. 이런 미나리의 특성은 영화 ‘미나리’ 속 제이콥의 가족과 닮았다.

3일 개봉한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 아칸소로 떠난 이민 가족의 삶을 그리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떠났던 과거 우리의 모습이자 이번 영화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내용이 담겨 있지만 결국 척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을 그려냈다.

미국 대도시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살던 이민자 1세대인 제이콥은 자신의 농장을 만들고 싶은 꿈을 가지고 시골 아칸소로 가족과 함께 삶의 터전을 옮겼다. 번듯한 자신의 농장을 꾸려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 아들을 부양하는 것이 제이콥의 꿈이건만 현실은 쉽지 않다. 아내 모니카는 남편의 뜻에 따라 아칸소로 함께하지만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바퀴 달린 컨테이너 집을 보자 헛헛하기 그지없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제공: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스틸컷(제공: 판씨네마)

제이콥은 ‘빅 가든’을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밭에 쓰일 물을 얻기 위해 나름 머리를 써서 우물을 팠지만 곧 말라버리고 애써 농작물을 수확했더니 구입을 약속한 업자는 철회하고 만다. 부족한 삶이 더욱 부족해질수록 제이콥과 모니카의 관계도 살벌해진다.

어려운 생활에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사로 손을 보태기로 한다. 그래서 심장이 좋지 않은 아들 ‘데이빗’을 돌볼 엄마 ‘순자’를 미국으로 부른다. 순자는 가방 가득 멸치, 고춧가루, 한약 등을 바리바리 싸 온다. 모니카는 바퀴 달린 컨테이너 집을 순자에게 보이기 부끄러워하지만 순자는 오히려 “재미있네”라며 가볍게 넘긴다.

이런 순자의 모습은 미국에서 자란 남매의 눈에는 낯설다. 특히 미국에서 태어나 할머니를 처음 본 데이빗의 눈에는 할머니 같지 않다. 쿠키를 구워주지 않고 뜨개질이 아닌 레슬링을 보며 화투를 치는 순자의 모습은 데이빗이 알고 있는 ‘미국 할머니’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자는 아픈 데이빗에게 ‘스트롱 보이(strong boy)’라고 응원해주며 아빠는 가지 말라고 한 개울과 미나리 심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데이빗과 순자는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가족의 사랑으로 점점 물들어 간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제공: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스틸컷(제공: 판씨네마)

영화는 1980년대 팍팍한 이민자의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혀 희망스럽게 꾸며내지 않았다. 오히려 안쓰럽다. 그렇다고 가족의 사랑을 억지 신파로 덕지덕지 포장하지도 않았다. 다만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면서 가족의 삶을 현실적으로 담백하게 담아냈다. 그 담백함 속에 표현된 가족의 단단함은 관객과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결국 영화가 말하는 것은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이다. 10년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병아리 똥구멍을 보면서도 자기 밭을 꿈꿨던 제이콥,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가족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찾던 모니카, 낯설어하는 남매의 어려움을 사랑으로 극복하려는 순자, 마지막으로 그 속에서 가족의 사랑을 배우는 어린 남매까지. 어려움 속에서 힘이 되는 것은 가족이라는 것을 감독은 따뜻하면서도 담담하게 담아냈다.

정이삭 감독은 이민 1세대인 한국 부모님 밑에서 1978년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아칸소 시골 마을 농장에서 자랐다. 그래서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화투, 레슬링 선수 김일 등을 통해 한국적인 모습을 담아냈으며 아칸소의 아름다운 풍광을 미국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섞었다.

거기다 배우들의 호연은 관객들을 1980년대로 옮겨놓는다. 제이콥을 연기한 스티브 연의 모습은 당시 한국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다. 미국으로 왔지만 여전히 가부장적이며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흰색 러닝 셔츠와 사각 팬티로 보여준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제공: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스틸컷(제공: 판씨네마)

그리고 윤여정은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 할머니 ‘순자’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미국 애들은 미나리가 좋은 건지 모르지?”라고 한 순자의 말을 빌려 “미국 애들은 윤여정이 연기를 잘하는지 모르지?”라고 영화는 가감 없이 말한다. 덕분에 윤여정은 현재 미국 내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고 있으며 강력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로 점치고 있다.

모니카를 연기한 한예리 역시 자식을 위한 엄마의 모습을 잘 녹여냈다. 스티브 연과 윤여정에게 가려진 것처럼 보이나 그렇기에 영화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마치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가족을 이끌어가는 한국 엄마의 모습과도 같다. 마지막으로 남매 앤과 데이빗을 연기한 노엘 케이트 조와 앨런 김의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워 눈을 뗄 수 없다.

한편 영화 ‘미나리’는 미국 내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하고 있으며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제78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이에 오는 4월 25일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수상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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