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석 정무위원장이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관한 공청회 안건을 상정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윤관석 정무위원장이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관한 공청회 안건을 상정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핀테크·빅테크 내부거래 외부청산

“빅브라더”vs“투명성 확보” 갈등

이주열-은성수, 저격발언 주고받아

깊어진 갈등에 갈 길 잃은 전금법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을 두고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의 충돌이 계속해 이어지고 있다. 전금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되고 본격적인 법안 심사에 돌입하면서 두 기관 간의 신경전이 격해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서로 저격 발언을 주고받으면서 양 기관의 자존심 대결로 확전돼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계속해 이슈가 되고 있는 전금법 개정안은 무엇일까. 해당 안은 지난해 11월 국회 정무위원장인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이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지급용단말기, 컴퓨터 등을 이용한 금융거래와 관련돼 있다.

해당 안은 기존 전자금융거래법이 2006년에 제정된 이래 스마트폰이 개발되는 등의 금융 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발의됐다. 여기에는 네이버,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인터넷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거대 IT 기업)의 금융업 진출, 경쟁 촉진, 관리·감독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왜 전금법 개정안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일까. 바로 금융거래를 하면서 생기는 채권·채무 관계 계산과 금융회사가 주고받는 금액을 확정하는 청산 업무를 두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각기 다른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현재 청산에 필요한 계산은 금융결제원이 대신하고 있다. 관리·감독과 돈을 송금하는 등의 역할은 한국은행이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금법 개정안이 핀테크·빅테크의 내부거래를 외부기관인 금결원의 청산을 통해서 하되 금융위가 허가·감독하는 규정이 담겨있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서울=뉴시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해당 규정에 대해 한은은 특유의 지급결제 관리 영역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고객의 모든 전자지급거래 정보를 금융위가 별다른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어 ‘빅브라더(국가의 비합법적인 감시체계) 법’이라며 날을 세웠다. 반면 금융위는 빅테크·핀테크를 통한 금융거래에 대한 투명성 확보를 위해 내부거래 외부청산 의무화는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립하고 있다.

지난 17일 한은은 입장 자료를 내고 “전금법 개정안은 지급결제시스템을 소비자 감시에 동원하는 빅브라더법”이라며 “관련 조항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정안의 내용에 대해 법무법인 2곳의 자문을 받은 결과 빅브라더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금융위가 외부 청산 사례로 든 중국의 지급청산기관 왕롄(Nets-Union)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은은 “중국조차도 왕롄이 빅테크 내부거래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 않다”며 “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국정부는 빅테크 내부거래 정보를 모두 들여다보는 세계 유일의 사례가 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강하게 반발했다. 한은의 입장 자료 발표 다음날인 지난 18일 이한진 금융위 전자금융과장은 “중국 왕롄도 내부거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가 있는데 고민해야 할 것은 중국의 시스템”이라고 밝히며 한은의 지적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중국의 인민은행은 중앙은행이자 전자금융업자, 제3자 지불기관에 대한 감독자”라며 “두 가지 기능을 가지면서도 은행수준의 규제에 가깝게 하도록 200개여개의 빅테크·핀테크들까지 인민은행에 예치하라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장은 “은행만큼의 신뢰를 갖도록 모두를 규제할 수 없고 그렇다고 분식회계, 도산 가능성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규제를 완화하는 무책임한 주장을 할 수는 없다”며 “어떻게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냐, 흐름에 어떻게 동참할 것이냐는 고민에서 이 법안에 대해 발언하고 기회를 갖자는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반영해 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연합회 등 금융협회장들과도 회동하기 위해 간담회장으로 향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연합회 등 금융협회장들과도 회동하기 위해 간담회장으로 향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19일에도 금융위의 반발은 계속됐는데, 은 위원장은 “한은이 전금법 개정안에 대해 ‘빅브라더’라고 한 건 오해다. 조금 화가 난다”고 밝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통신사에 통신기록이 남는다고 해서 빅브라더가 될 수 있느냐”며 “지금도 자금 이체를 하면 금결원으로 가는데 현재 금결원이 한은에 있으니 스스로 빅브라더라고 말하는 격”이라고 맞받아쳤다.

한은은 여전히 전금법이 빅브라더가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23일 “전금법 개정안은 빅브라더 문제를 피할 수 없다”며 “통신사를 빅브라더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맞지만 여러 통신사가 가진 정보를 한곳에 모아두고 그걸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빅브라더”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은 위원장의 “금결원을 관리하는 한은이야말로 빅브라더”라고 맞받아친 것에 대해 재반박했다. 그는 “금융결제원으로 가는 금융기관 정보는 다른 은행과의 청산에만 필요한 것”이라며 “지급결제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로 어느 나라나 똑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금법 개정안 발의 목적이 소비자 보호에 있다는 금융위 측 주장을 두고 “금융결제를 한데 모아 관리하는 것은 소비자 보호와는 무관하다”며 "지금도 소비자 보호 장치는 있다"고 말했다.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관한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기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류영준 핀테크산업협회장, 류재수 금융경제원 상무이사. (출처: 연합뉴스)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관한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기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류영준 핀테크산업협회장, 류재수 금융경제원 상무이사. (출처: 연합뉴스)

이러한 상황에 전금법 이해당사자들도 제각기 목소리를 내며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전금법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한은과 금융위의 입장을 대변한 전문가들의 설전이 있었다.

공청회에 참석한 양기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빅테크 내부거래 외부청산 의무화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빅테크가 제공하는 정보에 내부거래가 포함된 것은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다는 이유다.

양 교수는 전금법 개정안이 개인정보보호법 체계와 충돌한다고 지적하며 “과거 마이데이터 사업 관련한 주문내역 정보와 같이 국회에서 빅테크 거래에 대해 외부청산대상이 되는 정보대상을 합리적으로 최소한 정보로 제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개정안 취지에 동의하면서 “진입규제를 완화하면서 불공정 행위, 금융안정에 대한 촘촘한 법적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운을 뗐다.

정 소장은 “청산제도는 기능 면에서 바람직하고, 중앙은행이 탄생한 계기”라며 “빅테크 내부거래를 외부기구에서 청산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은 감독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밝혔다.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관한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기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류영준 핀테크산업협회장, 류재수 금융경제원 상무이사. (출처: 연합뉴스)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관한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기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류영준 핀테크산업협회장, 류재수 금융경제원 상무이사. (출처: 연합뉴스)

한편 이 같은 금융위와 한은의 갈등이 양측의 밥그릇 싸움, 곧 권한 다툼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빅테크의 내부거래 외부청산 의무화 규정을 두고 한은과 금융위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양측의 권한 다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두 기관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안동현 교수도 “금융당국과 한은이 언론에서 설전을 벌이는 형국”이라며 “학자를 떠나서 국민으로 볼 때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고 강 의원의 지적에 동감했다.

그는 “(전금법 갈등은) 한은 총재와 금융위원장이 실무진을 데리고 끝장토론을 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현재 전금법 개정안이 최종법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무총리실 산하 개인정보보호위원회(위원회)는 한은과 금융위 간의 갈등에서 한은 손을 들어줬다. 해당 개정안이 개인정보보호 이념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정보를 금융위에 제공할지 담겨 있지 않은 점과 대통령령에 위임한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는 이유다.

전국 금융산업노동조합은 양 기관을 모두 비판했다.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의 금융 진출로 논의할 사안이 많음에도 금결원의 관리·감독을 두고 밥그릇 싸움만 몰두한다는 주장이다.

이같이 논란이 확산하자 한은과 금융위는 잠시 다툼을 자제하고 있다. 은 위원장은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 한은과 협의하겠다며 양 기관이 언론을 통해 설전을 벌이는 것을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두 기관의 갈등의 골이 깊은 만큼 개정안의 국회 처리까지는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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