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1심 무죄 파기… 운전자가 모를 수 없다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운행 중인 차량 뒷좌석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면 운전석의 동승자에게도 강간죄가 인정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6일 서울고법 형사8부(황한식 부장판사)는 운전자에 특수강간죄를 적용하지 않았던 1심 판결을 뒤집고 차량 운전자 이모(35) 씨에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서울고법에 따르면 2009년 12월 이 씨는 조직폭력배 행세를 하며 ‘형님’으로 모시는 하모 씨와 함께 서울 강남 역삼동에 있는 유흥주점을 찾았다. 이날 술자리를 마친 후 하 씨가 여종업원 A(27) 씨에게 속칭 2차를 요구했으나 A씨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 씨는 폭언과 욕설을 통해 A씨를 협박해 콜기사가 대기시켜 놓은 승용차 뒷좌석에 강제로 탑승하게 했고, 하 씨가 A씨 옆에 앉았다. 이 씨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직접 운전대를 잡고 시속 180km의 속도로 질주했다.

하 씨는 이를 틈타 A씨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고 추행을 넘어 결국 승용차 안에서 A씨를 성폭행했다. 하 씨는 A씨의 고소로 특수강간죄가 인정돼 징역 3년의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는 차량 안에 함께 있었으나 자신은 운전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 씨의 특수강간죄 성립 여부였다.

그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하 씨와 범행을 공모하지 않았고 시속 180km의 속력으로 다른 차량을 추월하면서 운전하는 데 전념하느라 뒷좌석에서 성폭행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1심에서는 A씨를 차량에 강제로 감금한 사실은 인정됐으나 하 씨와 함께 합동으로 강간했다는 협의에 대해서는 이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2심에서는 원심과 달리 이 씨가 하 씨의 강간 행위와 협동관계에 있었다고 판단, 공소사실 전부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 6월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하 씨가 유흥주점에 올 때부터 피해자와 2차를 노골적으로 원했던 점에 비춰 피고인은 하 씨가 어느 장소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피해자와의 성관계를 시도할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차량의 속력, 음악 볼륨 크기 등을 고려하더라도, 차량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성관계가 이뤄졌다면 불과 1m 정도 앞자리에서 운전 중이던 피고인이 이를 전혀 인식조차 못 했을 거라고 도저히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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