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고 따뜻한,

 유재영(1948 - )깃동잠자리 반원 긋다 날아간 평화로운 산자락 나직이 배를 깔고 누워있는 너럭바위 위로 맹금류 한 마리 황급히 솟구치자 허공의 단면을 붙잡고 있던 노박나무 덩굴들이 깜빡 놀라 술렁댔다 이윽고 한 초식 동물의 창백한 영혼이 드문드문 흩어진 자리 오래도록 물갬나무 그늘이 내려와 비어진 공간 한쪽을 말없이 덮어주었다.

 

 

깃동잠자리가 반원을 긋다 날아간 산자락에는 너럭바위가 배를 깔고 누워 있다.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 평화로운 풍경 속 문득 맹금류가 한 마리 솟구쳐 오르자 풍경은 잠시 술렁거린다. 그런가 하면, 이내 물갬나무 그늘이 내려와 공간 한 쪽을 말없이 덮어준다. 정(靜) 속의 동(動), 동(動) 속의 정(靜). 정과 동이 서로 어우러지며 ‘푸르고 따듯함’을 만들어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은 본래 이렇듯 ‘푸르고 따뜻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지닌 그칠 줄 모르는 욕망이 이 자연을 무차별로 파헤쳐놓고, 그러므로 자연과의 불화를 일으키고 있다. 깃동잠자리, 맹금류, 노박나무, 초식 동물, 물갬나무. 이들 생명과 생명들이 서로 어울리어 연출하고 있는 따뜻하고 푸르른 세상. 시인만이 아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삶이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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