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자 할머니(오른쪽)가 6.25전쟁 이후 간호사 시절 동료와 함께 찍은 사진.

6.25 당시 장병들의 생명을 지킨 간호장교 박명자 할머니

[천지일보=김충만 기자] ‘간호장교’ 하면 장병들의 건강을 돌보며 마음의 상처까지 보듬고 치유해 준 수호천사 나이팅게일이 생각난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한국전쟁 때 간호장교로 복무했던 박명자(80, 사진) 할머니를 만나 당시의 상황을 들어봤다.

박 할머니는 “아직도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전쟁으로 세상을 떠난 동료들과 가족들이 생각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전쟁 당시 간호장교는 598명이었지만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해 병원을 찾았던 장병은 평균 5만 2500명의 엄청난 인원이었다.

지금도 당시의 처참함이 잊히지 않는다는 박 할머니는 “그때 환자는 끊임없이 들어왔지만 의료장비 및 물품이 부족해 장병들은 생사를 오가는 고비를 수 없이 넘겼다”며 “다행히 지역 주민의 헌신적인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많은 군인들이 전쟁의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는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미국에 있는 마취회복실을 국내에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그는 군의학교(간호사관학교) 개교 이래 업무를 훌륭히 마치고 정식 서류절차를 밟아 첫 번째로 전역한 간호장교이기도 하다.

6.25전쟁으로 힘들고 어려웠을 텐데 간호장교로 복무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박 할머니는 “간호사로서 나라를 위해 노력하는 군인 환자를 돌볼 때였다”고 답했다.

그는 “돈보다는 군인으로서의 책임감, 나라의 은혜를 받았다는 자긍심을 훨씬 중하게 여겼고 지금도 마찬가지다”며 간호장교로서의 자부심이 가득하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도 의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박 할머니는 국군의 의료에 대해 “아직도 군 병원의 역량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부모들이 자신의 아들과 딸을 믿고 군대에 보낼 수 있게 하는 병원, 아플 때 정말 믿고 자신의 몸을 맡길 수 있는 군 병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군 전역 후 젊은 시절을 나병 환자촌을 찾아다니며 여러 의료봉사를 하던 박 할머니는 1991년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 인정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서 2년에 한 번씩 전 세계 간호업무 종사자 50명을 선정해 수여하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記章)’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한때 악성 뇌종양으로 병상에서 오랜 투병시간을 보냈지만 다시 일어나 보건소, 경로당, 주민센터 등에서 노인성질환(관절염․고혈압․당뇨 등) 강의 및 운동요법을 가르치면서 사는 박명자 할머니.

그는 “나라를 위해 늙은 내가 이런 일이라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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