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직장인 김모씨(25)가 1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학교 시절 3년 동안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상습적으로 언어적 폭행과 따돌림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2.23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직장인 김모(25)씨가 1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학교 시절 3년 동안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상습적으로 언어적 폭행과 따돌림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2.23

인터넷-SNS로 학교 폭력의 어두운 과거 고발

학폭 연예인-운동선수 실제 퇴출

“이번 사태 기회 삼아 쇄신 힘써야”

[천지일보=박혜옥 기자] “저에게 학교 폭력을 한 가해자들이 ‘학창시절 아무 문제없이 잘 지냈다’ ‘사건 사고 안 벌인 착한 아이였다’ 등 착한 이미지로 TV에 나온다면 SNS 등을 통해 그들의 실체를 폭로할 거에요.”

직장인 김모(25)씨는 중학교 시절 3년 동안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상습적으로 언어적 폭행과 따돌림을 당했다. 기자와 16일 만난 김씨가 따돌림을 당한 데는 ‘집안이 못 살아서’ ‘얼굴에 여드름이 있어서’ 등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는 학창 시절 내내 학내 위클래스를 통해 심리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성인이 돼서도 아직 그때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가끔 비슷한 상황이 되면 몸이 움찔거리고, 우울증에 빠진다. 친구를 못 사귀고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믿지 못하게 됐다.

이번에 스포츠 배구선수 학교 폭력 미투 소식을 접한 주부 홍모(56)씨는 남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의 아들 두 명도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아들 두 명은 서울의 한 체육 관련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기숙사에서 돌아온 아들들의 가슴과 허벅지에서 큰 멍을 발견했다. 확인 결과 3학년 주장선배가 자신보다 뛰어난 기록을 달성해 이를 시기해서 한 학년 후배를 시켜 2주간 폭행한 것이었다.

홍 어머니는 “어린 아이 때 일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는 말의 의미를 모두 인지했으면 한다”라며 “이번 배구선수 폭행 미투 소식을 접한 어머니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을 거다. 학교 폭력 가해자는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배구연맹(KOVO) 사옥에서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린 가운데 복도에 학폭 논란에 휩싸인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팀 소속 이재영 선수 사진이 걸려 있다. ⓒ천지일보 2021.2.1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배구연맹(KOVO) 사옥에서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린 가운데 복도에 학폭 논란에 휩싸인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팀 소속 이재영 선수 사진이 걸려 있다. ⓒ천지일보 2021.2.16

뒤늦게 폭로되는 유명인들의 ‘학폭 논란’

학교 폭력 피해자들은 시간이 흘러도 또 다른 폭력에 노출돼 있다. 어느 때고 트라우마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 TV에 등장하는 순간 시간은 다시 폭력 당시로 회귀된다. 이는 2차 가해와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인터넷, SNS 등을 통해 뒤늦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로 인해 학교 폭력의 어두운 과거가 유명인 혹은 스타덤을 꿈꾸는 예비 스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높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의 유력 우승 후보였던 가수 진달래는 과거의 학교 폭력이 알려지자 자진 하차했다. 프로배구 V리그 또한 흥국생명 이재영·이다영 자매, 남자부 OK금융그룹의 송명근, 심경섭의 학교 폭력 논란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이들 모두 최근 SNS 등을 통해 학창 시절 친구들을 상대로 학교 폭력 가해를 저지른 것이 드러났다.

흥국생명은 해당 사태에 대해 사과하며 “이재영·이다영 선수의 출전은 무기한 정지됐다”고 밝혔다. 대한민국배구협회도 “학교폭력 가해자는 국가대표 선발에서 제외될 것”이라며 태극마크를 박탈했다. 연이은 학폭 논란이 불거지자 다른 구단도 서둘러 전수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폭력 폭로는 유명인을 넘어 일반인까지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직장인 익명게시판과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는 항공업계 등 민간 기업에서도 학폭 가해자가 있다는 폭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文대통령 “체육분야 폭력 근절, 특단의 노력 기울여 달라”

‘배구 학폭’ 논란에 대해 보고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황희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폭력 등 체육 분야 부조리를 근절할 특단의 노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했다. 이전에도 문 대통령은 체육계 폭력 문제 해결을 거듭 주문해 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의 고(故) 최숙현 선수가 소속팀에서 지도자와 선배들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당시, 최윤희 문체부 2차관에게 스포츠 인권을 강화할 것을 강력히 지시했다.

대구지법 제12형사부는 지난 1월 29일 최 선수에게 가혹행의를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규봉 전 감독과 장윤정 전 주장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각각 징역 7년과 4년을 선고했다.

김도환 전 선수에게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또 이들에게 아동학대 재범예방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더불어 김 전 감독에게는 5년, 장 전 주장에게는 5년, 김 전 선수에게는 3년 등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기관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문체부 또한 16일 “교육부 등 관계 당국과 협의해 학교 운동부 징계 이력을 통합 관리해 향후 선수 활동 과정에 반영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대한체육회 국가대표선발규정 제5조에 따라 (성)폭력 등 인권 침해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 경우 국가대표 선발을 제한한다”며 “향후 관련 규정 등을 통해 학교체육 폭력 예방 체계를 구축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 “이번 사태 기회 삼아 쇄신 힘써야”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기회 삼아 쇄신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제 터질게 터진 듯 보였다. 그동안 적지 않은 피해자들이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부담이 컸다”며 “하지만 SNS를 통해 피해에 대한 상처를 숨기지 않고 표현하고 가해자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폭력 문제에 대해서 철저하게 모니터링하고, 재발하지 않게 교육하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하다”고 지적했다.

아직 수면에 드러나지 않은 학교 폭력 가해자에 대해서는 “본인이 스포츠계나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자라면 가해 사실에 대해 피해자에게 먼저 사과하고 정당하게 밝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추후 드러나게 된다면 제2·제3의 이재영·이다영 남매 같은 돌이킬 수 없는 ‘국민밉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라며 “먼저 스스로의 학폭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고진광 시민단체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왕따방지법’을 발전시킨 학폭방지법 일명 ‘서로서로배려법(가칭)’ 제정을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근본적인 재발방지를 위해 먼저 가해자가 피해자를 만나 사과하는 ‘화해와 배려’ 운동을 펼칠 생각”이라며 “또 일시적인 대책이 아닌 피해자가 납득하고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는 방법을 전문가 자문을 거쳐 구체화할 필요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외국어학교에 다니는 고등학교 3학년 김모 학생은 학교폭력 미투에 대해 “연예인들 그리고 스포츠인들 사이에서만 해도 가해자가 이렇게 많다면 우리나라 숨은 곳에 가해자들, 아직도 고통 받고 있을 피해자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이 되지 않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학교에서는 보통 부모님들께 해결하시라고 하거나 학생들에게 학폭위가 열리면 번거로워지고 생활기록부에 평생 남으니 일을 크게 만드는 게 좋지 않다고 가해·피해 학생들에게 말하면서 덮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문제 해결이 아닌 학교 폭력 문제를 쉬쉬하고 넘기려고 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가해자가 전학을 가더라도 보복을 무서워하며 평생을 고통 속에 살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또한 “학교 폭력 문제가 해결이 되려면 학교, 가정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학생들이 매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일기의 중요성을 일깨워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동시에 학교 폭력 관련 학교 방침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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