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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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에 들어가면 오로지 빛이 들어오는 출구 쪽만 보게 된다. 때문에 운전자는 터널 벽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전체적인 조망을 못 하고 근시안적 판단과 결정을 할 때 종종 ‘터널 시야(Tunnel Vision)’ 현상이 인용되고는 한다.

최근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는 학폭 사례들은 터널 시야 현상으로 풀이될 수 있다. 터널 시야 현상은 의학적으로는 시각장애 증상으로 망막세포 변성증의 징후 가운데 하나로 사물을 볼 때 주위는 깜깜해 상하좌우 주변은 볼 수 없고, 가운데만 보인다. 터널 비전 증상은 뇌 병변, 안과 질환은 물론이고 전환장애나 공황장애 같은 심리 현상에서도 볼 수 있다. 몸의 현상으로 항공기에서 기압의 변화로 혈중 산소가 감소할 때 나타나기도 하는데 두뇌의 혈액순환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충격 때문에 일어나기도 한다. 즉, 사람이 불안과 공포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전체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흔히 학교 폭력을 당한 이들의 트라우마가 작용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다루는 논문들이 꽤 있다. 일단 자아존중감이 낮아지고 대인 관계 기피증이 생기며 자신을 바라보는 평판에 매우 민감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정상적인 생활에 타격이 일어나고 특정 상황에서 감정 통제가 안 될 수 있다.

이런 내향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미디어 환경에 따른 피드백 효과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성폭력 미투도 그렇지만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미디어 매체에 나올 경우 피해자는 상대적인 고통의 강화 현상을 겪게 된다. 주로 성공하거나 행복한 모습으로 비춰질 때 더욱 그 고통의 정도는 심화 된다. 더구나 인기 스타나 연예인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행복한 데 비해 자신의 불행이 대비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개인적인 고통 때문일 수도 있지만, 뭔가 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작용한다. 오로지 그 미디어에 비친 그들의 모습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반면 과거의 고통스런 경험만이 계속 잔상으로 뇌는 물론 마음도 괴롭게 만든다. 결국, 터널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만다. 미디어 매체가 이를 이용해 비즈니스 하는 것은 역시 터널 시야 현상을 강화한다. 가해자들도 과거 근시안적인 터널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한 행동 때문에 앞길이 파탄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모바일 문화에서 인지해야 한다. 이제 과거의 잘못은 미래에 언제든 드러날 수 있는 정보 공유의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거꾸로 허위 제보도 터널 시야 현상에 갇히는 점은 물론이다.

그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도 터널 시야 현상에서 벗어나는 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2013년 리차드 아리아스-헤르난데스(Richard Arias-Hernandez)와 브라이언 피셔(Brian Fisher)의 연구에 따르면 응급구조체계에서 위기 상황에서 개인이 터널 시야 현상에 빠지게 될 수 있고 제대로 된 구조를 못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전체적인 협력과 보완이 어렵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대안적인 가용자원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만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거나 처벌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에서 필요한 것은 위기에 대한 초과 몰입이 아니라 전체적이고 근원적인 조망의 시각과 관점의 전제이다. 지금은 학교 폭력 자체에 너무 터널 시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 와중에 억울한 피해자도 나오고 있다. 나아가 가해자나 피해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주체들이 자신들의 터널에 빠지지 않도록 사회적 정책적 제도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에서 미디어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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