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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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정치사상으로 유지되는 나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경제파탄으로 ‘국가부도’ 사태를 맞고 있다. 남들이 모두 줴던진 사회주의 허울을 못 벗어버린 비참한 결과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지난 11일 당 경제부장에 오수용을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10일 경제부장에 앉힌 김두일을 30일 만에 경질한 것이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의 오른팔인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김두일을 일으켜 세운 채 쳐다보는 장면이 담긴 노동당 전원회의 사진도 10일 공개했다. 사진으로만 보면 조용원 조직비서가 김두일 경제부장을 일어서게 한 뒤 책임 추궁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김두일은 사진이 공개된 이날 해임됐다. 바로 그 자리에는 김정은 총비서도 앉아 있었다. 작정하고 김두일 경제부장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가히 ‘김정은식 충격요법’이 아닐 수 없다. ‘한 달 경질’뿐만 아니라 ‘한 달 만에 전원회의’도 극히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노동당 제8기 1차 전원회의를 연 데 이어 한 달 만인 이달 8~11일 제8기 2차 전원회의를 또 열었다. 그러나 경제부장의 경질은 누가 봐도 어설프다. 대관절 임명된 지 한 달도 안 된 당 경제부장이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벌써 바꿔야할 ‘경제정책’을 그대로 둔 채 경제부장이 아니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바꿔도 북한 경제는 회생하기 어렵다. 사회주의 경제 구조에서 경제의 사령탑은 당연히 내각총리가 돼야 하고 실권자는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이어야지 노동당 경제부장이 경제를 컨트롤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바로 고속성장을 하던 1950~1960년대의 북한 경제를 보라. 그때 북한 경제의 사령관은 내각 수상 김일성이었고 경제설계사는 정준택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집권당은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곳이지 그것을 집행하는 곳은 아니다. 내각의 실권을 노동당이 가져간 다음부터 북한 경제는 무너져 내렸다. 정확히 김정일이 실세로 집권한 1974년부터 그 시점을 잡으면 된다. 그때부터 내각은 바지저고리가 됐고 북한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붕괴가도를 치달았다. 최근 또 하나의 북한 변화가 있다. 북한 외무성은 19일 리룡남(61) 전 내각 부총리가 신임 주중대사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전임 지재룡(79) 대사가 2010년 10월 베이징에 부임한 지 10년 4개월 만의 전격교체다. 리룡남은 무역성에서 잔뼈가 굵은 전형적 경제 관료다. 지재룡을 비롯해 역대 주중대사는 대부분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당 대 당(黨對黨) 외교를 전담하는 노동당 국제부 출신이었다. 외교 소식통은 “경제난 해소가 북한의 국시(國是)가 됨에 따라 주중대사도 경제 일꾼으로 교체한 듯하다”고 했다.

리룡남은 한국에도 낯이 익다. 내각 부총리 시절이던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을 따라 방북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대기업 총수를 비롯해 재계 인사 17명을 한데 모아놓고 차례로 자기소개를 받은 뒤 남북 경협 등을 논의했다. 그해 8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선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도 만났다. 가족 배경도 탄탄하다.

리룡남은 김정일의 군부 최측근이던 리명수(87) 인민군 차수의 조카다. 항일 빨치산 2세 등 북한 개국공신 자제들과 함께 ‘북한판 태자당’ ‘북한판 금수저’로 불린다. 삼촌의 후광 속에 국장을 건너뛰고 2001년 무역성 부상(차관)에 오른 데 이어, 2008년엔 최연소(48세) 상(相·장관)이 됐다. 2014년 대외경제상을 거쳐 2016년부터 5년간 부총리를 지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노동당 8차 대회를 열어 경제 실패를 인정하고 당 관료들을 대폭 물갈이했다. 후속 최고인민회의에선 부총리 7명 가운데 리룡남을 포함해 6명이 경질됐다. 하지만 나머지 5명과 달리 리룡남은 당중앙위 후보위원으로 살아남았고, 한 달 만에 주중대사에 발탁됐다. 리룡남의 주중대사 임명은 향후 북한의 대중관계가 정치보다 경제에 치중한다는 노골적인 시그널이다.

물론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북한의 ‘자력갱생’ 어림없는 소리다. 그나마 중국에 의존하고 중국식 개혁 개방정책을 따를 때 북한 경제개발에 한줄기 빛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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