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오면 불교가 자랑하고 이 민족이 자랑하고 세계가 인정하는 ‘초조대장경’ 조성 천년을 맞아 세계문화축전이 합천 해인사(海印寺)를 중심으로 열리게 된다. 불심(佛心) 즉, 신앙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로 제작된 초조대장경이 간행된 지 천년이 된 것이다. 이를 기념하고 대장경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세계에 알림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없을까. 천년 된 올해가 아니더라도 대장경의 진가는 이미 세계가 놀라고 또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문화축전은 열려야 한다. 그러나 참으로 알아야 할 것은 천년 된 대장경의 역사도 중요하겠지만, 천년 전 기록된 글의 내용이며 뜻이다. 그 글이 중요한 이유는 후대를 위해 신(神)이 허락한 약속의 글이기 때문이다.

판에 그처럼 힘들게 기록되고 오늘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오늘의 우리로 하여금 그 글의 뜻을 깨달아 지키라는 명령이 숨어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보는 게 마땅할 것이다.

이천년 전 예수도 유월절 밤에 제자들과 함께 둘러 앉아 떡과 포도주로 최후의 만찬을 베풀었다. 그리고 ‘떡과 포도주’는 내 ‘살과 피’를 대신한 것이니 어느 때까지 매년 기념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 피는 ‘언약의 피’라 했으니 때가 되면 뭔가 깨달아 지켜야 할 약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천년 동안 이를 기념해 왔다면 이제는 그 약속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지킬 일만 남아 있다는 생각은 못 해보는 걸까.

유불선을 포함한 모든 종교는 결국 하나임을 깨달아야 한다. ‘종교(宗敎)’라 했으니 하늘의 것을 가르치는 것이 틀림없지 않은가. 불제자라면 석가의 가르침을 깨달아야 하고, 유교를 믿는다면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고,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의 말을 깨달아 지켜야 한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그분들의 가르침이 곧 종교이기 때문이다.

팔만대장경 속의 미륵불(彌勒佛)도, 유교의 정도령(正道靈, 바른 진리를 가지고 오는 성령)도, 성경의 진리의 보혜사 성령(保惠師 聖靈)도 표현만 다를 뿐 한 존재를 약속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석가의 가르침은 앞으로 미륵불에 의해 새 세상이 펼쳐지며 분열된 모든 것을 통일하고 인류를 구원한다는 약속이다. 유교를 포함한 동서고금 모든 예언서에도 세상을 구원할 정도령의 출현을 약속하고 있다. 이 모두가 한결같이 성경이 약속한 진리를 가지고 오는 보혜사 성령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불경에는 ‘하시야소래何時耶蘇來 오도무유지등야吾道無油之燈也’라, 언젠가 예수가 오면 우리의 도는 기름 없는 등불이 된다는 뜻이며, ‘야소재림耶蘇再臨 오도중흥吾道中興’이라, 그러나 예수가 재림하면 우리의 도는 다시 중흥할 것이란 뜻이며, ‘여등각료汝等覺了 야소지주耶蘇之主 약불야若佛也’라 했으니, 너희들은 분명히 깨달으라 부처가 말하는 주는 바로 예수니라’는 뜻이 된다.

즉, ‘불(佛)자’는 ‘사람人’ 변에 ‘아니弗’로 사람이 아닌 성령을 뜻하는 것이며, 그 보혜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불경에 기록된 석가의 가르침을 훤히 알 수 있게 되니 곧 중흥한다는 것이다.

불교가 통일하는 세계가 따로 있고 유교가 통일하는 세계가 따로 있고 기독교가 통일하는 세계가 따로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우리는 말세를 만나 자기의 경전이 있어도 아무 소용없는 글이 되어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을 뿐이다.

중종 때 유학의 정도를 넘어 천문과 지리에 능했던 남사고 선생은 오늘날을 ‘말세골염末世汨染 유불선儒彿仙 무도문장無道文章 무용야無用也’라 했으니, ‘모든 종교가 구태의연하게 신앙을 하며 각자 자기 종교에 골몰하여 문장은 있어도 말씀이 없어 쓸모가 없구나’라고 잘 예언해 놨다. 그러면서 선생은 ‘태고이후太古以後 초락도初樂道 사말생초死末生初 신천지新天地’라 했다. 이는 유사 이래 처음 있는 가장 즐거운 말씀이며, 죽음이 끝나고 영생이 시작되는 새하늘 새땅이 있음을 미리 말해 놨던 것이다.

결국 유불선 삼도(三道)는 십자가의 도로 승리하는 ‘십승지(十勝地)’가 있음을 알리고 있었으며, 그 곳은 ‘비산비야(非山非野)’라 했으니,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세상의 들과 산에서 얻을 수 있는 양식으론 살 수 없음을 의미하며, 어떤 지명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十勝之人’ 즉, 십자가의 도로 싸워 이긴 성인(聖人)을 찾아 해인(海印)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가르침을 해인사(海印寺)의 팔만대장경은 모든 신앙인에게 알리고 있음을 잊지 말자.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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