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AP/뉴시스】러시아를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5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정상회담 장소인 모스크바 크렘린궁으로 입장하고 있다.
【모스크바=AP/뉴시스】러시아를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5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정상회담 장소인 모스크바 크렘린궁으로 입장하고 있다.

일반인 아닌 국가 주도 외교전

트럼프 “中에서 코로나 만들어”

중·러·이란 “美가 무기로 제조”

中 “거짓 정보 유포한 적 없다”

[천지일보=이솜 기자] “미국인을 조심하라!”

소문은 질병과 거의 동시에 시작됐다. 중국이 처음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폐렴’을 보고한 날, 외국에서 생물 무기를 발사했다는 주장이 중국 소셜미디어에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음모론 확산을 경고한 지 1년이 지난 이달 15일(현지시간)까지 바이러스의 기원을 둘러싼 여론전이 뜨겁다.

AP통신은 이날 코로나19에 대한 음모론과 거짓 정보를 퍼트리는 데 미국, 중국, 러시아, 이란 정부가 가장 크게 활약했다며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우슬과 함께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텔레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AP통신은 이들 4개국의 지도자부터 정치인들, 매체가 코로나19와 관련된 가짜 정보를 유포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음모론을 증폭하는 ‘슈퍼 전파자’였다고 지목했다.

◆美는 중국탓, 중·러·이란은 미국 탓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해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데 가장 앞장섰던 것은 중국이었다. 코로나19 발병 초기 대처로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년 1월 26일 내몽골의 한 남성이 코로나바이러스를 두고 미국이 제조한 생물 무기라고 주장하는 동영상을 게시했다. 이 영상은 중국 SNS 콰이쇼우에서 1만 4천번 조회됐다가 삭제됐으며 이 남성은 소문을 퍼뜨린 죄로 체포돼 10일간 구금됐다가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나 불과 6주 후 중국 외교부는 최소 30명의 외교관과 공관, 국영 매체를 통해 이 같은 음모론을 퍼뜨렸다.

반면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부터 공화당 하원의원까지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힘쓰며 중국 과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론을 확산시켰다.

미국의 이 같은 언사가 거세지자 중국은 공세에 나섰다. 2월 22일 피플데일리는 미국이 이 바이러스를 중국으로 가져왔다는 추측을 부각하는 기사를 실었고, 핀란드 헬싱키 타임스, 뉴질랜드 헤럴드와 같은 신문에 삽입된 기사를 통해 세계적으로 보도했다.

중국이 노골적으로 허위사실 유포에 나서기 전인 1월 러시아 관영매체는 미국이 바이러스를 무기로 조작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1월 20일 러시아 육군 매체인 즈베즈다는 정치인인 이고르 니쿨린을 인용해 중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미국의 생물 무기 실험과 관련이 있다고 발표했다. 그는 4월까지 적어도 러시아 TV에 18번 출연해 같은 주장을 했다.

‘EU 대 허위정보’가 집계한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 친정부 언론에서는 두 달 동안 유사한 무기 주장을 담은 70건 이상의 기사를 스페인어, 아르메니아어, 아랍어, 영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해 내보냈다. 러시아 정치인들도 여기에 합류해 이 바이러스는 중국을 훼손하기 위해 ‘지구를 지배하려는 자들이 만든’ 생물 무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얼마 후 극우 민족주의 자유민주당의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당수는 미국과 탐욕스러운 제약회사의 탓이라는 시사를 하기도 했다.

3월 9일 미국 메릴랜드주 포트데트릭의 한 연구소에서 미군이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를 만들었다가 2019년 10월 우한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 기간 중 중국에서 뿌렸다는 글이 위챗에 게재됐다. 다음날 백악관의 ‘위 더 피플’ 포털에는 익명의 청원이 등장했는데 “디트랙 요새에서 바이러스가 개발돼 연구소에서 유출됐는지 여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촉구였다.

이튿날, 자오 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우한에 전염병을 가져온 것은 미군일지도 모른다. 투명해지자. 정보를 공개하라. (미국은) 해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이 트윗은 6주 동안 최소 54개의 언어로 9만 9천번 이상 공유됐다. 최소 30개의 중국 외교전문지와 베네수엘라의 외무장관과 카라카스의 특파원은 물론 사우디까지 그를 도왔다.

이날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도 코로나19가 생물학적 공격의 결과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관영 매체들은 하메네이의 메시지를 강화, 확산했다. 타스님뉴스는 자칭 러시아 생물 무기 전문가를 인용해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바이러스를 조작했음을 시사했다.

이란의 군사, 종교 지도자들은 반복적으로 이 바이러스를 미국이 만든 생물무기라고 언급했다. 그들의 발언은 차례로 러시아 언론에 의해 증폭됐고 중국에서 퍼져 더 많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하메네이는 3월 22일 페르시아의 연례 신년 연설에서 미국에서 바이러스가 만들어졌다는 음모론을 미국의 지원을 거절한 정당성으로 다시 들었다. 미국에서 주는 약이 바이러스를 더 퍼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지난 4월 러시아와 이란은 공개 메시지에서 무기 음모를 일축했다. 사망자 폭증이라는 더 시급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계속했다.

지난달 WHO 조사팀이 코로나19의 기원을 조사하기 위해 우한을 방문했을 때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포트 데트릭 생물 실험실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중국 외교부는 AP에 “과거에도 (음모론을 유포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 없다”라면서 “허위 정보는 인류 공동의 적이며 중국은 항상 허위 정보의 생성과 확산을 반대해왔다”고 반박했다.

◆“2019년말 우한에 이미 코로나 광범위 확산”

한편 우한에서 코로나19 기원을 조사한 WHO 조사팀은 2019년 12월에 우한에서 보고한 것 이상으로 더 광범위한 감염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징후들을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WHO 우한 현지조사팀을 이끈 페터 벤 엠바렉 박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2019년 12월 12개 이상의 바이러스 변이가 발생한 것을 포함해 광범위한 확산 징후를 발견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에 따르면 12월 우한에서는 이미 1천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엠바렉 박사는 전했다.

앞서 2019년 12월 31일 중국은 WHO에 정체불명의 폐렴을 처음으로 보고하면서 우한의 감염자는 41명이라고 보고했다.

엠바렉 박사는 우한에서 코로나19 발병을 처음 보고했을 당시 이미 13종의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금껏 중국이 조사를 막은 수십만개의 혈액 샘플에 대한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호주 시드니대 바이러스학자인 에드워드 홈즈 교수는 “2019년 12월 우한에서 채취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염기서열에서 이미 유전적 다양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달보다 더 오랫동안 바이러스가 퍼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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