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당일인 12일 서울역 인근 차도에 차가 없어 휑하다. ⓒ천지일보 2021.2.12
설 당일인 12일 서울역 인근 차도에 차가 없어 휑하다. ⓒ천지일보 2021.2.12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거리에 사람 없는 거 보이시죠? 오전 7시 반부터 나왔는데 손님 4명 태웠네요. 설 대목임에도 이렇게 손님이 없던 적은 처음입니다.”

12일 오전 11시께 설 당일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역 인근 차도와 거리는 고요하고 적막했다. 택시기사 오모(68, 남)씨는 ‘5인 이상 모임 금지 속 설날 손님이 얼마나 줄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오씨는 “택시 업계에서 설은 대목이다. 예년 설에는 오전부터 손님들이 몰려 정신없이 바빴는데 올해는 5인 이상 모임 금지 때문인지 뚝 끊겼다. 역이 거리고 사람이 없다”며 “기름 값만 나오지 더 있어봤자 소용이 없겠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설 연휴 기간 가족끼리라도 ‘5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내놨다. 종교시설 등에서 잇따라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가운데 아직 긴장을 늦출 순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이번 설은 직계 가족이라 할지라도 사는 곳이 다르면 5인 이상 모일 수 없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 보내게 됐다.

이렇다보니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설을 쇠던 모습은 사라졌다. 노원구 월계동에 사는 김모(70, 여)씨는 “방역 수칙 때문에 오전엔 첫째 딸과 사위, 오후엔 둘째 딸과 사위 이런 식으로 오고가고 하고 있다”며 “예전 같았으면 자고 가라고 하겠지만 그렇게도 못한다. 2시간 있다 가는게 전부”라고 말했다.

설날 당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도 바뀐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매년 명절이면 인파로 북적였던 서울역은 사람이 적어 다소 한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서울역 열차 승강장에서 내리는 이들 대부분은 1~2명 단위의 승객이었다. 가족 단위의 승객들은 1~2팀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3명이 최대였다.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시민들도 혼자가 많았다. 역에서 만난 박길자(75, 여)씨는 “포항에 간호사 딸이 혼자 사는데 걱정도 되고 해서 남편은 두고 나 혼자라도 내려간다”며 “딸 얼굴만 보러 가는 것이지 외출이나 이동은 안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김소민(20, 여)씨는 “5인 이상 모임이 안 되다 보니 가족들이 모여 차례 음식을 할 수가 없어서 부모님 대신 할머니를 돕고 오는 길”이라며 “다 같이 모였으면 더 좋을 걸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설 당일인 12일 명동 거리가 사람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2.12
설 당일인 12일 명동 거리가 사람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2.12

명절이면 늘 가족·연인 단위의 나들이객들로 붐볐던 서울 번화가도 행인 숫자를 손꼽아 셀수 있을 만큼 인적이 드물었다. 명동의 경우, 중국의 춘절 기간(7~13일)과 겹쳐 설날마다 항상 많은 요우커(중국 관광객)가 방문했지만 코로나19로 발길이 뚝 끊겼다. 이러한 여파로 롯데면세점 명동본점 등 시내면세점은 처음으로 설날 당일 문을 닫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날 기자가 찾은 명동역 인근 거리에선 10개 점포 중 문을 연 점포 1개를 찾기 쉽지 않았다. 두 달 전 임대 문구가 걸린 상가도 여전했다.

◆ “고향 가는 대신 친구랑”… 맛집 줄서고 북적

반면 활기를 띄는 곳도 있었다. 바로 종로 일대였다. 약 20여명의 노인들은 역 인근에 앉아 쉬거나 이야기하고 있었다. 뒤늦게 합류한 노인들은 명절은 잘 보냈나는 말로 대화를 이어갔다. “문재인이가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 등 정치 얘기도 들렸다. 한 노인에게 “설날인데 왜 나와계시냐”고 물었더니 “집에 있으면 눈치를 보니 불편하다. 애들이 싫어하고 나도 바람 쐬는게 더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옆에선 “코로나 그까짓거 걸려도 그만이다” 등의 말도 들렸다.

정부는 코로나19 재확산을 막기 위해 피해를 감수하고 방역조치를 실행한 것이지만 일각에선 여전히 모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울 종로 익선동 거리에는 적지 않은 인파로 가득했다. 대부분 젊은 층이었다. 골목마다 즐비한 유명 맛집엔 줄까지 길게 이어졌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골목엔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경기 부천에서 왔다는 이모(22, 여)씨는 “설 연휴에 고향에 가는 대신 친구와 함께 맛집을 찾았다”며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박모(25, 남)씨는 “사람이 없을 줄 알고 왔다”며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이 많아서 놀랐는데 방역수칙을 최대한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설 당일인 12일 서울 종로구 익선동 골목이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2.12
설 당일인 12일 서울 종로구 익선동 골목이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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