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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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대로 북한의 정부기구인 내각 안에는 사법성이란 법률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상에 공화정치를 하는 나라치고 거의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48년 9월 9일 정권수립 때는 엄연히 사법성이란 기구가 있었고, 그 책임자는 남로당 거두 이승엽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전쟁을 거치고 사회주의 개조기를 거치면서 이른바 인민을 위한 독재를 완화한다는 그럴듯한 명분하에 사법성을 해체하고 검찰소와 최고재판소 기능으로 대체했으며 경찰기구인 사회안전성이 그 역할을 대신해 왔다. 이번 8차 당대회에서 북한이 노동당 안에 규율조사부와 법무부라는 부서를 새로 만든 것은 그만큼 북한 법질서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따라서 법치주의를 회복할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기구는 행정집행기구인 내각에 둬야지 정책부서인 노동당 안에 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북한도 이제 본격적인 법치주의로 가겠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과연 당 안에 법무부를 새로 신설한 후 법률지배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투성이란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만큼 북한의 부정부패가 심하다는 반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 중 하나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공공부문 청렴도 조사에서 180개국 중 170위로 최하위 권에 머무른 국제기구 조사결과가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실제 지난해 북한에선 각종 비리 사건과 이에 따른 고위 간부 해임이 잇따랐다. 이례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런 사실을 공개 지적했을 정도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고모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과 현영철 전 인민무력상 등이 모두 부정부패 혐의로 처형되기도 했다.

북한의 부정부패는 이제 일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북한의 통치구조가 미작동을 넘어 이미 썩을 대로 썩었고, 인민들의 생활 패턴이 완전히 붕괴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죽하면 과거 김정일 위원장의 승용차가 도로에서 진창에 빠졌는데 뇌물을 안 주면 밀어주지 않는다고 말해 “고인다”는 말이 일상용어로 됐겠는가 말이다.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IT)가 지난 1월 28일 공개한 지난해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북한은 100점 만점에 18점을 받아 170위를 기록했다. 지난해(17점, 172위)보다 점수와 순위 모두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이 숫자는 아시아 지역 국가 중 맨 꼴찌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북한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국가는 리비아와 수단, 베네수엘라, 시리아 등 8개국뿐이었다. 국가별 부패인식지수 조사는 국가별 공공·정치부문 부패 정도를 평가하는 지표로, 100점에 가까울수록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물론 북한 사회의 폐쇄성을 고려할 때, 비정부기구(NGO) 등 제3자가 자료나 정보를 검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부정부패 실태는 3만 4천여 탈북민 등을 통해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탈북민 출신 북한 인권운동가 박지현씨는 한 방송에서 “북한에선 뇌물이 만연해 당연히 여기기까지 한다. 신고 체계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조나단 코라도 코리아소사이어티 정책 담당 국장은 “2019년 탈북민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68%가 수입의 10~30%를 뇌물로 사용한다고 응답했다”며 “특히 비공식적 시장 경제에 참여하는 주민에 대한 착취가 불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일 위원장 시대 때만 해도 웬만해서 북한 내부의 모순을 최고 통치권자가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 간부들에게 부정부패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장’을 날리는 일도 빈번해지더니 드디어 실제 당내에 이를 전담하는 규율조사부와 법무부를 신설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것 같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했던가. 북한의 부정부패를 노동당이 두 개의 신설기구로 막기에 이미 때는 늦었다. 정부의 내각에 사법성을 새로 내오고 제도 전반을 개혁할 때 북한의 부정부패는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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