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여성유도회 중앙회 박혜자 회장

▲성균관여성유도회 중앙회 박혜자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이길상 기자] ‘성균관유도회’. 다소 생소한 말로 들린다. 쉽게 말하자면 이는 유림단체로서 기독교나 불교의 신도회와 같은 조직이다. 유림하면 선비가 떠오르고 남자들이 연상되지만 성균관유도회에는 여성 유림들로 구성된 여성유도회가 있다. 여성유도회가 출범한 지도 어느덧 36년이 흘렀다.

성균관유도회는 시대에 맞는 유교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 유림들이 활동 폭을 넓히고 그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오늘날 여성의 활약상과 역할을 볼 때, 여성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성균관유도회에서 여성 유림들의 참여와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국 100여 개 지부를 거느리고 있는 성균관여성유도회 중앙회 박혜자 회장을 만나 여성유도회와 유교이야기를 들어봤다.

◆‘충서(忠恕)’- 정성과 공감
유교가 조선시대 국가통치 이념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에서 유교는 생활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박 회장은 유교의 영향을 받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렇지만 유교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학교 다닐 때 종교를 조사하면 ‘유교’라고 적었을 뿐이었다.

그런 박 회장이 유교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유도회에서 실시했던 다도(茶道)와 전통예절 교육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후 유교를 공부하게 된 박 회장은 공자의 가르침이 참 훌륭하다 것을 알게 됐고 지금까지 유교에 몸을 담고 있다.

박 회장은 “처음에 공부할 때는 차와 예절을 중심으로 해서 공자의 가르침에 대해 잘 몰랐다. 그 후 <논어> <동문선습> 등을 공부하면서 유교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다”면서 “특히 <논어>는 유교의 성경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구절구절이 모두 가슴에 와 닿았다”며 공부할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듯했다.

박 회장은 ‘유교’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먼저 떠오르게 된다며 그 중에 ‘인(仁)’을 가장 큰 덕목으로 꼽았다. 인은 바로 사랑이며, 사랑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져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라는 것이다.

또한 박 회장은 유교의 덕목을 한마디로 ‘충서(忠恕)’라고 말했다. 그는 ‘충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충(忠)’이라는 것을 보통 나라에 충성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학생들에게나 어디를 가서 물어봐도 그렇게 대답한다. ‘충’이란 ‘진기지심(盡己之心)’으로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부모를 모실 때도 정성을 다함은 물론,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집중하고 예의를 다 갖추는 것을 뜻한다. ‘서(恕)’는 같음을 뜻하는 여(如)와 마음을 뜻하는 심(心)이 결합된 글자다. 나의 마음이 타인의 마음과 같다는, 혹은 같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서’란 단순한 용서가 아니라 나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공감이다.”

▲ 지난 5월 16일 열린 성균관 전통성년례에서 박혜자 회장이 계빈(집안의 여자 어른)을 맡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유교, 남녀차별 없다”
유교하면 여성들이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유교 사회에서 여성이 유림으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철저히 배제돼 왔기 때문이다. 이는 오륜(五倫)의 부부유별(夫婦有別)을 잘못 이해한 측면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박 회장의 판단이다. 박 회장은 “부부유별은 남녀를 차별하라는 뜻이 아니다”고 말한다. 즉, 그 역할이 구별돼 있을 뿐 공자의 가르침에는 남녀의 차별이 없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유도회의 명칭을 바꾸자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유교를 뜻하는 ‘유도(儒道)’와 스포츠인 ‘유도(柔道)’가 구분이 잘 안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회장은 ‘여성유도회’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얼마 전 성균관여성유도회가 캄보디아로 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항직원들이 성균관여성유도회란 명찰을 보고 “할머니들이 유도하십니까?”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웃어넘길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박 회장의 생각이다. 그만큼 여성유도회가 사회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여성유도회 활동 한계
박 회장은 성균관여성유도회가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은 하고 있지만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아 대외적인 활동에는 한계가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아울러 성균관 내부에서도 여성유도회의 역할에 많은 제약이 있음을 숨기지는 않았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은 성균관 대성전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최근덕 관장 이후에 그나마 여성의 역할을 조금씩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올해 처음으로 여성유도회지부장 고유(告由, 중대한 일을 치른 뒤에 그 내용을 사당이나 신명에게 고함) 때 여성유도회장이 헌관(獻官, 제사 때에 잔을 신위에 올리는 제관)이 돼 행사를 치렀다. 지금은 성균관 행사 때 헌다(獻茶,차를 올림)례도 여성들이 맡아 하고 있고, 석전대제에서는 행사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당하집례(堂下執禮)’의 역할을 여성들이 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유림들의 역할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는 얘기다.

◆시대에 맞는 예절교육 필요

 

 

▲성균관여성유도회 중앙회 박혜자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예절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이것이 박회장의 생각이다.

“일부 어른들이 ‘예(禮)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는 옛날에 비해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옛날 방식 그대로 하는 것은 현대에 맞지 않는다. 지금은 부모님이 숟가락 들기 전에 아이들이 숟가락을 안 들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만큼 아이들이 바쁜 시대가 됐다. 예절도 현대에 맞게 편리하고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옛날 것만을 고집한다면 현대사회와 융화될 수 없고 옛날의 유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는 유교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돼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점점 쇠퇴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무척 피곤하게 산다. 건강한 노인이라면 전철에서 젊은이들에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시대에 맞는 예절이라고 생각하면 좋은데 옛날의 방식만 고집하면 젊은이들과 이질감이 생기고 아이들이 따라올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성균관에서는 인성교육을 할 때 현대식으로 하며 시대에 맞는 예절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존중·이해하는 사회 바람직
박 회장은 유교의 발전을 위해 애정 어린 충고를 했다. 유교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후진양성’이라는 것이다. 젊은 유림들을 양성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위해 집중적인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유교의 전통문화를 현대에 맞게 보급하기 위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는 얘기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요, 예의 근본이다. 박 회장은 아이들 앞에서 부모에게 효를 실천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어쩔 수 없이 부모를 모실 수 없는 경우에는 부모를 자주 찾아뵈라고 말한다.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박 회장은 “내 생각에는 내가 70% 정도 며느리에게 양보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른이 먼저 베풀어야 한다. 어른이 베풀지 않으면 아래 사람이 따라올 수 없다. 효자‧효부를 만드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다. 어른들이 사랑으로 감싸주고 양보하고 베풀어야 한다. 나는 어른들에게 무조건 베풀라고 강조한다. 내가 먼저 자애를 베풀 때 자식들이 효도할 마음이 생긴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박 회장의 생각이다.

사회는 물론 종교 간에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박 회장은 내 것만 옳다는 식의 이기적이고 편협된 생각은 버려야 우리 사회가 아름다워진다고 말한다. 남을 대할 때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밟고 사는 형제요, 이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라는 뜻이다.

박 회장은 이제 여성유도회중앙회 회장 임기가 끝난다. 이를 계기로 여성유도회가 혁신을 가져오기 바라고 있다. 그는 여성유도회 명예회장으로서 자신이 회장 시절 이루지 못한 일들을 후임 회장이 잘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도와줄 작정이다. 박 회장의 바람대로 여성유도회가 크게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지난 5월 16일 열린 성균관 전통성년례를 끝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왼쪽에서 세번째가 박혜자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약 력
성균관 대학교 유학 대학원 유림지도자과정 수료
성균관 충효교실 교육 강사 위촉장 취득
성균관여성유도회 중앙회 사무처장 역임
성균관여성유도회 부설 명덕학당 강사 역임
성균관여성유도회 중앙회 부회장 역임
성균관여성유도회 부설 명덕학당 교장 역임
성균관대학교 동양문화 고급과정 수료
현)성균관여성유도회 중앙회장
현)성균관 청소년 인성교육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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