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복궁 강녕전 권역 우물 (사진제공: 문화재청)

맛도 좋고 여름엔 시원 겨울엔 따뜻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물은 필수다. 태고시대의 인류는 강변에 취락을 형성하며 거주했고, 지하수를 퍼 올리기 위해 우물을 파서 식수나 생활용수를 공급받았다.

궁궐 내 우물은 사료를 통해 복원된 것과 터가 남아있다.

조선시대 왕실 기록 도서 중 하나인 <진찬의궤>나 <왕조실록>, 법전인 <대전회통>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궁궐 내 우물들은 각 처소․거주자별 성격에 따라 용도가 달랐다.

궐내 대전은 국왕이 나라의 업무를 보고 침전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대전 옆에 마련된 강녕전, 대전수라간(음식 만들던 곳), 대전세답방(빨래하던 곳) 등에 우물이 각각 있었다. 이같이 곳곳에 우물이 따로 배치된 이유는 소마다 물의 쓰임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이곳 외에도 왕비가 거하던 중궁전에 마련된 교태전, 중궁전수라간, 중궁전세답방, 침방 등에도 우물이 각각 마련돼 있었으며 역시 용도가 달랐다.

▲ <동궐도> 창덕궁 경훈각에 있던 우물(빨간 원) (사진제공: 문화재청)

이처럼 같은 물이지만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사용 용도에 따라 곳곳에 우물을 뒀다. 편전ㆍ궐내각사․마랑 등 궁궐 내 모든 기관뿐만 아니라 궁중 연회를 위해 임시로 설치된 곳 옆에도 우물이 있었다.

우물의 수질은 어느 정도일까. 흔히 우물은 고인물로 생각해 수질이 나쁠 것으로 예상하지만 ‘아니올시다’이다. 지하수를 투과하는 사력층(砂礫層)이 물을 여과하기 때문에 우물 안의 수질은 일반적으로 양호하다.

또한 우물물에는 다소의 무기질이 용해돼 있어 음료로서 맛도 좋았으며, 지하 10m를 초과하는 지하수의 수온은 연중 거의 일정해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느껴진다. 반면 얕은 우물은 변소 또는 가축으로부터의 오물 등에 오염되는 위험성이 있어 종종 전염병 집단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우물은 일반적으로 깊게 팠다.

경복궁 내 우물은 규장각의 <복궐도형> 자료를 통해 총 24곳으로 밝혀졌다. 그중에서 현존하고 있는 우물이 4곳이며, 세답방 우물 2곳이 복원됐다. 나머지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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