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서울시장 후보들이 앞다투어 주택 공약을 내놓고 있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이 많다. 이번 선거는 보궐선거다. 재임 기간이 14개월밖에 안 된다. 이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을 말하고 시간표를 제시해야 마땅하다.

그들이 내놓은 공약은 주택 건설의 특성을 생각할 때 대부분의 경우 3~4년이 지나야 구체화될 수 있다. 당선 후 잔여 임기 14개월이 끝나고 나면 당연히 연임을 한다는 믿음을 갖고 말하는 것일까? 유권자의 생각은 물어보지도 않고 본인 스스로 집권기간을 설정하고 약속을 남발하는 것이라면 유권자 대중을 기만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박영선 전 장관은 5년 안에 토지는 임대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 임대부’ 주택 30만호를 반값 아파트로 공급하겠단다. 도로를 지하화하고 도로 부지에 1인 가구를 짓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좋은 대안임에 틀림없지만 이를 공급하려면 토지 공유화 방안부터 내는 게 순서다. 도로 부지 위 주택 공급 방안은 현실성이 문제된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위 인공부지 조성’ 또는 ‘지하철 1호선 지상구간 지하화로 공공주택 16만 가구 공급’ 계획을 내놓았다. 철로 자리와 도로 위 주택공급은 서울시장 권한도 아닌데다 현실성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서울에 5년간 74만 6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한다. 국철과 전철을 지하화한 뒤 청년주택 5만호, 역세권, 준공업지 등에 40만호, 재개발 재건축을 통해 3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한다. 속된 말로 ‘뻥’이다. 그가 대통령 선거 나올 때도 공약하지 않은 수치다. 이 정도 규모의 계획을 말하려면 예산소요계획과 예산조달계획은 내놓고 말해야 한다.

국민의힘 출마자인 나경원, 오세훈 전 의원의 주거 공약은 비슷하다. ‘규제’를 대폭 풀고 이른바 ‘세금폭탄’을 없애는 것이다. 박근혜의 줄푸세의 복사판이다. 용적률과 건물 층수 제한을 풀고 재개발 재건축을 활성화하며 재산세를 완화하겠다고 한다. 아마도 나경원씨, 오세훈씨 모두 결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하지 못할 것이다.

나경원 전 의원은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과거 이를 폐지할 때마다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던 주거 흑역사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분양가상한제 폐지를 내건 건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않으려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분양가상한제 폐지는 서울시장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대규모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서울시장 후보들의 공약은 세입자들과 예비세입자들, 무주택자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입자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일종의 기획 작품의 성격이 짙다.

지난 총선 때 필자가 사는 지역에서 당선된 여당의원은 아파트단지 지하의 주차장화 등 실행할 수 없는 공약을 남발하고 당선됐다. 다른 지역 많은 후보들도 개발공약을 남발하고 당선됐다. 이번에 나온 서울시장 후보들 공약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대한민국 선거에서 공약은 ‘빌 공자’ 공약이 된지 오래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는가 하는 것이다. 내용물이 없음에도 포장을 멋있게 한다.

공약을 남발해도 왜 문제가 안 될까? 유권자가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공약 남발에 대한 처벌 법규도 없다.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있지만 검찰은 허위로 판명된 선거 공약은 허위사실로 보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 놓고 공약을 남발하는 것이다.

법으로 처벌하는 규정이 없는 경우 그나마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정당 스스로 허위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에 대해 제재를 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인데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기대난망이다. 정당 스스로 자정하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공약 남발 행위는 매표 행위에 다름 아니다. 주권자를 깔보는 행위이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악행이고 끊지 않으면 안 될 악습이다. 누가 고칠 것인가.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뭉쳐서 대응하는 방법 말고 다른 길은 없다. 깨어 있는 유권자들이 연대할 때 그때 비로소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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