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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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법무장관을 보는 국민과 야당의 시선에는 우려가 깊다. 박 장관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 보고서가 야당의 반대로 여당 단독으로 채택했고,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한바 이로써 박 장관은 청문보고서 채택 없는 27번째 장관이 됐다. 야당이 박 장관에 대해 반대한 이유가 여럿 있었고, 현재 기소된 입장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지라 헌정사상 첫 피고인 법무장관으로서의 지위 때문에 일반 국민들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피고인 장관이 되건, 야당이 반대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의 인사권한을 행사했다. 문 대통령은 장관 임명장 수여식날 동부인한 배우자들에게 꽃다발을 선사하면서 박범계 장관 배우자에게는 꽃다발을 주었는데, 장미꽃 한 송이와 초롱꽃으로 구성된 꽃다발이다. 이 꽃다발에 청와대에서는 적당한 의미를 부여한바 “한 송이 장미는 ‘완결’을 의미하고, 초롱꽃은 ‘정의’를 의미한다는 내용이었다. 배우자가 한 나라의 법을 관장․집행하는 박 장관을 잘 내조해 “검찰과 법무 개혁을 완결하고 인권과 민생 중심의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달라는 당부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으니 꿈보다 해몽이 좋다.

한 송이 장미가 ‘완결’을 의미하는지는 금시초문이다. 통상적으로 장미는 사랑을 의미한다. 장미가 빨강, 흰색, 분홍, 노랑색 등 갖가지 색깔로 피어나는데 대개가 빨강이니까 그에 따른 꽃말은 ‘열렬한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선사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아닌가. 재미있는 것은 초롱꽃이다. 장미만큼 흔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중부, 남부 지역의 야산에서 잘 자라나고 있는 여러해살이 풀꽃인 이 초롱꽃에는 좋은 의미의 꽃말들이 많다. 충실, 성실, 감사, 은혜, 기도 등인데 그 여러 가지 꽃말 가운데 ‘정의’라는 말도 포함돼 있긴 하다. 초롱꽃의 어린 순을 나물로 먹고, 꽃은 차로 마시며 뿌리는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하는 쓰임새가 많은 유용한 풀꽃이긴 하지만 ‘초롱불을 밝힌 누나가 약초를 구하러 간 동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숨진 그 자리에 피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져오는 초롱꽃이기도 하다.

장관 임명식장에서 대통령이 준 꽃다발에 관한 이야기지만 청와대가 부연 설명을 해서 한번 그 내용을 살펴본 것인데, 그건 그렇다 치고 박범계 장관이 임명 후 첫행사로 서울동부구치소를 찾았다. 추미애 전 장관 시절 문제가 돼 단일 시설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져 나온 시설이기에 장관 취임 첫날 그곳을 찾아 사정을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등 지속적인 대처행위는 그나마 잘 한 일이라 하겠다. 박 장관은 취임 첫날 검찰 대응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곧 있을 검사들의 2월 정기 인사와 관련해 주말에 정리를 해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만남을 통해 검찰 인사에 대해 의논하겠다는 말도 쏟아냈다.

취임 전 국회의 인사 청문 과정에서 야당으로부터 온갖 말들을 들어왔고, 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 야기된 소위 ‘추-윤 갈등’에 대해서도 그 정황 등을 잘 알고 있는 박 장관으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일, 그래서 법과 상식에 의한 말을 줄곧 해왔고 행동에 신중함을 보여왔던 것이다. 전임 법무장관들이 검찰개혁 한답시고 윤석열 총장의 손발을 묶으려 한 의도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박 장관은 2월 초쯤에 윤 총장과 만나 검찰인사에 대한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인즉 검찰청법을 간과했던 추미애 전 장관과는 다른 관점이다.

그렇지만 박 장관의 말에는 검사 인사에서 검찰총장의 ‘단순 의견’을 듣는 것으로 들린다. 검찰청법 제34조 제1항에는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는 내용이 있는바, 여기서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검사 인사를 제청하기 전에 ‘검찰총장의 의견’ 청취는 절차적인 것으로 적재적소의 검찰인사를 하기 위해 검찰총수로서의 총장 의견은 필수적이다. 그것은 조직이 유사한 경찰공무원법과 검찰청법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알 수가 있다.

경찰공무원법 제6조에 따르면 ‘총경 이상 경찰공무원은 경찰청장의 추천을 받아 행정안전부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용한다(제1항)’로 돼 있고, 경정 이하의 경찰공무원은 경찰청장이 임용한다(제2항). 두 개 법에서 인사 절차 등을 보면 장관급인 검찰총장보다 차관급인 경찰청장의 인사 관여도가 훨씬 강하다. 인사의 공정성․합리성에 견주어볼 때 검찰총장과 실질적인 검찰 인사 협의(의견 청취) 절차를 거쳐야 함이 법정신인바, 규정상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라’는 문구만 보고 단순 의견 청취에 그친다면 이는 법정신에 어긋나는 셈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점에서 박범계 장관의 첫 검찰 인사는 검찰총장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고, 협의과정에서 충돌이 없는지가 관건이라 하겠다. 전임 장관의 검찰총장 깔아뭉개기로 땅에 떨어진 검찰인사가 제 자리를 찾고 법무부의 정의가 되살아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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