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구재기(1950 -  )

박물관에서
속 찬 그릇 하나
본 적이 없다

빈 그릇들
모두 천 년을 살아온
보물들이라 했다

 

‘비움’은 아름다움이다. 비움이 없다면 채움도 없는 것. 그러나 다만 채움을 위한 비움이 아닌, 진정한 비움을 위한 비움은 더욱 아름답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채우기 위하여 안간힘을 쓴다. 배를 채우기 위하여 밥을 먹고, 자신의 끊이지 않는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아등바등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 ‘채움’ 그 자체가 때로는 우리의 삶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고적한 박물관 한 구석, 속을 모두 비워버리고 덩그마니 진열되어 있는 그릇들. 천 년, 아니 그 이상을 지나오며, 지금은 비워진 채 진열되어 있는 그릇들. 다만 유물들이 진열된 박물관이 아닌, 비움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일깨워주는 마음의 박물관에서, 시인은 진정한 보물을 발견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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