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한마디] 과거사 문제와 대일본 외교 유감
[외교 한마디] 과거사 문제와 대일본 외교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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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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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청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아무런 대비도 하고 있지 않았던 조선의 임금은 잠실 나루 근처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 전쟁에 패배해 수많은 조선 여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 그 중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라고 불렀다. 20세기에 이와 비슷한 일이 일본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는데 징용 배상 문제와 함께 현재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시 조선사회가 환향녀 문제를 다룬 방식과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 사이에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을까? 조선 여인들이 끌려간 것은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조선 남자들의 무력함의 결과이다. 당시 사대부들은 청나라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할 뿐 치욕을 씻기 위해 국력을 키우는 노력은 소홀히 하면서 양반들의 환향녀와의 이혼을 두둔하며 그들을 외면했다. 우리 대법원은 2018년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이어 올해 1월 일본군 위안부 배상 판결을 내렸다. 위안부 문제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 증언을 하고 나서야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해 얼마나 관심과 온정을 베풀었던가?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여인이 할머니가 돼서야 용기를 내어 자신의 비참한 과거를 털어놓기까지 우리 사회는 그들이 겪은 고초를 과연 몰랐을까? 해방 이후 한국 사회는 굴욕적인 과거에 대해 뼈를 깎는 반성을 하기 보다는 일본을 성토하기만 하지 않았던가? 국민에게 닥친 불행에 있어 1차적인 책임은 국가에게 물어야 한다. 환향녀 문제는 조선 조정이 책임을 졌어야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들은 강제 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여론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한다. 영국, 프랑스 등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들의 식민 지배를 받은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그간 충분히 사죄하고 배상했던가? 세계 도처에 과거사 문제가 있는데 무 자르듯이 해결되는 것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국제사회는 도덕 또는 정의보다는 불완전하지만 법적 해결을 추구하며 이 과정에는 나름대로의 규칙 또는 원칙이 있다. 우리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이 사안은 역사 문제가 아니라 국가 간 약속을 지키는가의 문제이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해석에 이견이 있으면 협정상 중재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일 양국 모두와 동맹관계인 미국은 어떤 생각인가?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볼턴은 회고록에서 ‘한국은 1965년 한일 조약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고 있다는 인식은 전혀 없이 그저 한국 대법원의 결정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또한 이번 위안부 배상 판결에 대해서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국내법정에서 피고가 되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상 국가면제의 원칙 문제가 제기됐다. 박근혜 정부 때 대법원이 징용 배상 판결을 미루면서 외교부와 협의했다는 것이 소위 ‘사법 농단’의 한 부분인데 외교적으로 논란이 예상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사법부가 소위 ‘사법자제’를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번 위안부 배상 판결에 대해 문 대통령은 징용 배상 판결 때와는 180도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간 한국 정부가 강하게 나갔으나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해제되지 않았고, 미국에 대해 일본을 압박해달라고 꺼내든 지소미아 협정의 파기 카드도 먹혀들지 않았으며, 현재 동경 올림픽을 북미 및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찾는 계기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협조가 필수적이어서 태도를 바꾼 것은 아닐까? 거기다가 한일 간에 불협화음을 원치 않는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도 고려했을지 모른다.

한국인이라면 누군들 일본을 무릎 꿇리고 싶지 않겠는가? 피해자라고 해서 가해자에 대해 ‘한풀이’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히려 득보다는 실이 많을 수 있다. 한일 관계에 있어서 역사적인 정의(正義)를 법적 절차로서 세우고자 한다면 국제사회의 원칙과 관례에 유의해야 한다. 한국 측의 무리한 조치가 일본사람들이 그나마 한국에 대해 갖고 있던 도덕적 부채의식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았을까 우려된다. 또한 현 정부는 출범 후 박근혜 정부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문제가 있다고 사실상 폐기 의사를 표명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합의를 공식 합의로 인정한다고 했다. 이처럼 일관성 없는 태도는 한국 정부의 대외적인 신뢰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집권세력의 정략적 고려와 정부의 외교 무능으로 한일 관계가 꼬이고, 판이 우리나라에게 불리해졌는데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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