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통상 정치인의 공약에는 보호나 보존 논리보다는 개발과 발전 논리가 압도적이다.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은 이것만큼은 여야나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공통적이며, 경쟁적으로 지역개발의 청사진을 쏟아낸다. 이런 면에서 보면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여전히 개발과 발전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행동 또한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얼마 전에 선거에 출마하는 한 정치인이 본인의 제1호 정책공약으로 자신이 출마한 지역을 ‘살기 좋은 15분형 도시’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15분 도시’라는 개념은 문자 그대로 15분 거리 내에 모든 생활이 가능한 도시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앞에 지역 이름인 ‘ㅇㅇ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프랑스의 학자인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주창한 ‘15분 도시’라는 개념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추정된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저탄소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일환으로, 코로나19로 바뀐 생활권 중심의 활동 패턴에 대응하는 정책으로’ ㅇㅇ을 15분형 도시로 바꾸겠다는 기획은 그 자체로야 나무랄 데가 없다. 오히려 새로운 도시생활의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현시점에 획기적이고 유의미한 계획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ㅇㅇ형 15분 도시’를 만드는 전략의 일환으로 최고 속도가 시속 1280km에 달하는 하이퍼 루프를 도심에 적용한 어반루프(Urban Loop)를 건설하겠다는 발표를 동시에 했다.

어반루프는 초음속 진공을 활용해 도시와 국가를 이동하는 하이퍼루프(Hyper-Loop) 기술을 이동 여건에 맞게 적용한 것으로 최고 속도가 시속 1280km(마하 1.06)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15분 도시 구축을 위한 인프라로 듣기에도 생소한 미래형 하이테크 첨단기술인 ‘어반루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SF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보던 미래형 교통수단인 어반루프를 현실적인 공약으로 발표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를 ‘15분 도시’의 기반으로 도입하겠다고 하니 그 둘이 어떻게 결합가능한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또한 이 정치인은 ‘어반루프’를 도심에 적용해 공항-항구- 도시를 잇는 55㎞ 구간을 15분 내에 주파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게 실제로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 논란이 많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계획이 그가 제1공약으로 내세운 ‘15분 도시’와 상충될 뿐 아니라 15분 도시의 취지와도 상반되는 논리라는 점이다.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주창한 ‘15분 도시’는 도시를 소규모 생활권 단위로 나눠 주거 문화 건강 관련 공공·편의시설을 조성하고 집에서 15분 내에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해 갈 수 있도록 한다는 기획이다. 즉, 도시를 속도와 개발 위주의 도시가 아닌 환경과 인간 친화적인 도시로 재편해 ‘탄소 제로’를 실현하자는 개념이다. 실제 ‘15분 도시’를 공약으로 내세워 재선에 성공한 파리의 이달고 시장은 파리 시내에 주차공간 6만개를 없애는 약속을 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친화형 도시를 만드는데 속도의 결정판인 광역 연결망 어반루프를 도입하겠다고 하니 ‘15분 도시’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 둘을 결합시킨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15분 도시의 핵심은 도시 안에서 자동차 통행을 억제하고 자전거 타기와 보행 여건을 대폭적으로 개선·확충하는 데 있다. 또한 이것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면 엄청나게 정밀한 작업,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15분 도시’의 핵심은 걸어서 15분 이내에 학교, 직장, 의료, 상점, 각종 여가시설 등이 존재해 주민들이 그 범위에서 완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지 신기술을 도입해 거리를 단축하고 생활권을 더욱 확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생활 필수 시설들을 가깝게 둠으로써 장시간의 출퇴근이 사라지게 되고 이로써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으며, 지역마다 발전한 상점과 소매상권, 문화시설을 매개로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 또한 기대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자동차 교통망으로 잇던 현대도시를 도보 생활권으로 바꾸자는 취지인 것이다.

어느 도시전문가의 말처럼 도시는 별들이 전쟁하는 공간이 아니다. 시민들이 쾌적하고 편안하게 살아가야 하는 삶의 터이다. 도시는 인간의 스케일과 생체 리듬에 맞게 만들어야지 과하면 사람들을 공격하는 괴물이 된다. 자꾸 새로 짓지 말고 기존 시설을 활용하되, 24시간 다목적으로 쓰이게 하라. 개구리가 왕자로 변신하듯 공간과 시설도 변신할 수 있다. 거액이 드는 ‘수술’보다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내는 ‘도시침술’이 답이다. 예산액의 동그라미가 하나둘 줄면 도시문제는 오히려 더 잘 풀린다. 자동차보다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도시에서 이동시키겠다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

세계적인 생태도시가 된 꾸리찌바시의 자이메 시장의 ‘도시침술’ 철학에는 이런 말이 있다. “긴급!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이로움보다 부작용이 클 수 있는 공약은 때로는 독약이 될 수 있다. 선거에 나서는 정치인은 이점 유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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