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가 21일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본사에서 아동학대 현장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2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가 21일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본사에서 아동학대 현장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27

매년 아동학대 사망자 증가

학대 행위자 75.6%가 부모

캠페인·교육 등 지원도 필요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1. 지난해 10월 13일 서울 목동 한 병원의 응급실로 생후 16개월 된 여자아이가 실려 왔다. 아이의 비쩍 마른 몸은 온통 멍투성이였고, 등, 옆구리, 배, 다리 등 전신에 학대를 당한 흔적이 있었다. 머리뼈는 깨져 있었으며 배 속에선 내장이 터져 피가 고여 있었다. 아이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숨을 거뒀다.

#2. A(3)는 장난감을 정리하지 않거나 애완견을 괴롭혔다는 이유로 자신이 ‘엄마’라고 부르던 여성에게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머리를 둔기로 여러 차례 맞고, 가슴을 세게 밀려 바닥에 부딪혀 두개골이 깨진 뒤 경막하 출혈로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모든 아동은 태어나면서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자랄 권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부모가 없거나 있더라도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이 있다. 최근 입양모가 16개월 된 입양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이른바 ‘정인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이러한 가운데 아동학대 해결을 위해 ‘친권박탈’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동학대 해결을 위해) 학대 행위자와 아이를 분리하더라도 친권자가 아이를 계속 키우고 싶다는 등 친권을 주장했을 경우에 부모를 제재 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하지 않다”며 친권을 정지거나 박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매니저는 “(학대당한 아이와 친권자를 분리하는 방안이) 법적으로 어느 수준까지는 갖춰져 있긴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부모의 학대로 아이가 분리됐다가 본래의 가정으로 복귀한 직후 재학대로 사망한 사건처럼 아동이 안전한지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귀결정이 내려지는 문제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학대행위자들이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주장했을 때 전문가의 역량이 부족해 반박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며 “또한 실제로 친권을 정지하거나 박탈하지 않는 이상 저항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친권을 박탈하기 위해선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동권리보단 친권 보호를 강조해 개입하기조차 쉽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가 21일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본사에서 아동학대 현장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2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가 21일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본사에서 아동학대 현장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27

그는 “우리나라에선 친권을 정지하거나 박탈하는 것이 아직까진 쉽지 않다”며 “친권을 박탈했을 때 아이를 책임질 후견인 제도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고 밝혔다.

후견인 제도란 친권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미성년자 또는 장애·질병·노령 등으로 인해 사무 처리 능력에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대리인을 선임해 피후견자를 돌보는 제도다.

미성년자의 경우 보통 부모가 법정 대리인이 되지만, 친권상실 선고를 받거나 행방불명과 같이 친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 이를 행사해줄 후견인이 필요하게 된다. 미성년자에 대한 후견인은 법원이 선임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자녀 학대를 이유로 부모의 친권이 박탈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민법상 친권상실이란 민법 제924조(친권상실의 선고)에 따라 자녀를 교양할 권리의무를 저버린 부모에 한해 친권을 상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성폭력을 이유로 한 친권상실 사례는 있지만, 아동학대를 이유로 친권이 박탈되는 일은 거의 없다.

◆단순화된 처벌 기준만으로 해결 어려워… 아동 이익 최우선 돼야

아이를 체벌하는 것에 대해 관대했던 우리나라의 경우 아동학대가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또 가정 내에서 경제적, 정신적인 문제 등 갑자기 위기가 생기거나 만성적으로 위험이 있다면 아동학대가 일어날 확률이 더 높아지게 된다.

게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져 있지 않아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게 고 매니저의 설명이다.

고 매니저는 “아동학대는 신고가 들어오면 부모와 아동을 분리하고, 행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단순화된 기준만으론 해결하기 어렵다”며 “아동을 보호하는 과정 전반에서 아동에게 무엇이 최선인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동학대 현장의 문제점에 대해 “피해자가 아동이고, 특히 가정에서 (학대가) 일어났을 경우 아동을 대변해야 하는 사람이 아동학대를 한 가해자인 경우가 된다”며 “아동이 어른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진술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상황은 어떤지 등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최근 5년간 학대피해 아동 사망 현황. (자료: 보건복지부) ⓒ천지일보 2021.1.27
최근 5년간 학대피해 아동 사망 현황. (자료: 보건복지부) ⓒ천지일보 2021.1.27

보건복지부(복지부)가 발표한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례 건수는 2014년 사상 처음 1만건(1만 27건)을 넘어선 이후 2019년 3만 45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19년 아동학대행위자 유형 중 75.6%가 부모이며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학대가 79.5%에 해당한다.

아동학대 사례가 해마다 늘어남에도 피해아동 발견율은 2019년 기준 평균 3.81%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9.2%)이나 호주(10.1%) 등 선진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다.

고 매니저는 “(아동을 상대로 피해상황을) 파악하려면 아동발달이나 심리를 잘 이해하고,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 아이들이 표현하는 방식으로 잘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그런 전문 역량을 갖춘 인력이 아직까지 갖춰지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아동을 분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분리하지 못하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며 “그게 이어져서 아동학대 사망사건으로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통뿐 아니라 아이에게 창피 주는 행동도 ‘아동권 침해’

아동권리협약을 제정한 UN 아동권리위원회가 발표한 논평에 따르면 아무리 가볍다 하더라도 아이에게 일정수준의 불편함이나 고통을 일부러 야기하기 위해 하는 모든 신체적·정서적 처벌은 아동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 매니저는 “불편함, 고통뿐만 아니라 굴욕적일 수 있는 소위 우리가 말하는 간접체벌이나 일부러 아이에게 창피를 주는 것 등이 모두 아동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이라며 “아동의 신체를 훼손하는 일이 아닐지라도 아동권리를 무시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추운 겨울에 아동을 실외로 내보내 방치하는 것도 당장 신체적인 훼손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을 위협할 수 있고, 부모로서 당연히 보호해야 하는 기본적인 조치를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방임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흔히 생각하는 체벌의 형태가 아닐지라도 아동학대의 형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가 21일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본사에서 아동학대 현장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2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가 21일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본사에서 아동학대 현장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27

◆민법915조 삭제, 체벌근절의 출발점… 국가적 차원서 계속 알려야

최근 부모의 아동학대로 아이들이 숨지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아동학대 가해자의 항변 사유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온 민법 제915조의 ‘자녀 징계권’ 조항이 63년 만에 삭제됐다.

민법 제915조에는 ‘친권자는 그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아동복지법에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징계권 조항은 체벌을 용인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개정된 법에선 이 같은 부분이 삭제됐기 때문에 법적으로 처벌을 금지했다고도 볼 수 있다.

고 매니저는 징계권 삭제에 대해 “아동학대 현장이나 사건법정에서 ‘훈육이었다’ ‘이건 학대가 아니었다’ 등으로 합리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훈육이나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체벌하는 게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사회에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물론 민법에서 (징계권이) 삭제됐다고 해서 당장 체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법적으로 체벌은 ‘금지’됐지만 우리사회에서 ‘근절’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체벌이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렇게 법이 바뀌었고, 법이 바뀐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점들을 계속 알려야 한다”며 “체벌 없이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캠페인이나 교육 등 지원이 이어져야 체벌 근절까지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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