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의 기본 위에서 여성의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의, 즉 페미니즘(feminism)을 내세운 정의당이 창당 9년 만에 최대의 존립 위기를 맞았다. 다름 아닌 당대표의 성추행으로 인해 당내외에서 지도부 총사퇴는 물론 당해체까지 요구받고 있는 상태다. 피해자는 같은 당 국회의원으로 알려진바, 그 의원은 “피해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닥쳐올 부당한 2차 가해가 두렵지만 내 자신 잃어버리는 일이 더 두렵다”는 이유로 당에 알린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성폭력, 성추행 등 범죄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 인지도가 높고 존경을 받아온 유명 인사들의 성범죄 행위로 혼란스러운 상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이 그 같은 이유로 사회여론의 뭇매를 맞았던바, 공교롭게도 3년 전 1월 말경, 방송에 나와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공개했던 현직검사 서지현 씨의 폭로 이후 우리사회에서는 ‘미투’ 운동이라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그럼에도 3년이 지난 현재에도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등이 끊이지 않고 있으니 사건이 있는 그때만 잠시 요란했을 뿐 성범죄에 대한 실제적 방지책은 효과가 없고 우리사회는 변한 것이 없다.

성범죄 피해자가 2차 피해, 3차 피해를 입는 동안에도 국가기관에서는 못 본 체했다. 서지현 검사가 ‘직장 상사로부터 성추행이 있었다’는 폭로 이후 이 사건에 대해 피해자를 고소했지만 대법원에서 사실 관계를 모두 인정했음에도 가해자는 법망을 피해나갔다. 가해자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은 채, 제기한 민사소송까지 소멸시효가 끝나가는 현 상황이니 서 검사로서는 얼마나 억울하고 황망하겠으랴. 당시 국가인권위가 검찰 내 성추행·성폭력 문제를 직권조사 하겠다고 나섰지만 강제조사권이 없어 진상 규명은 불발되고 말았다. 그러했으니 미투 운동에 참여한 시민단체와 국민들은 국가기관의 성범죄 사건 해결의 무성의를 성토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난 25일 인권위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 직권조사’ 결과 발표는 인권적 측면에서 정의롭고, 또 만연된 성범죄를 단죄하는 입장에서 획기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검찰, 경찰의 수사가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인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 전말이 확인되지 않고 흐지부지 종료된 상태에서 인권위에서는 그동안 약 6개월간 직권조사 끝에 “박원순의 성적 언동은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자칫 묻어질 뻔했던 이 사건이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의 조사를 통해 객관적인 사실로 인정된 것이기에 의의가 크다 할 것이다.

인권위의 결정과 권고대로 공적조직 내 위계구조 문제를 점검하고 제도를 개선해 공사기관 내에서 상사 등에 의한 성범죄가 다시는 발생되지 않아야 하고, 피해자가 2차 또는 3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완벽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만 정상적인 국가사회라 할 것인데, 아직도 성범죄 피해자가 고통의 피눈물을 흘리는 시간에도 가해자 측이 반성할 줄 모르는 우리사회다. 박원순 성범죄 피해자를 살인죄로 고발한 시민단체가 있으니 비정상사회의 단면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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