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의 한 가게에 ‘장사하고싶다’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천지일보 2021.1.2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의 한 가게에 ‘장사하고싶다’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천지일보DB

세계음식거리에 불 꺼진 음식점들, 인적 보기 드물어

환전소 “비행기 안 떠 외국인없고, 내국인조차 없어”

부동산 “상가 모두 도산 위기, 세입자만 죽어나간다”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아침 일찍 대로변에 나가보면 그릇들하고 집기 등 쓰던 물건을 그냥 내놓은 것을 보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용산 미군 부대가 이전하며 늘어나는 공실과 더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주변 상가들이 텅 비어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2일 불이 켜진 환전소 내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김순이(가명, 70대, 여)씨가 이같이 말했다.

1997년 서울 최초로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태원은 2010년대 들어 연예인이 운영하는 맛집 및 경리단길 등이 언론을 타면서 수요가 폭발해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춰버린 도시가 돼 있었다.

◆ 음식점 매출, 전년대비 절반 이하로 급감

이태원1동 상권의 매출액은 1년 내내 급락했다. 일반 음식점은 지난해 3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특히 중식은 80.8%나 떨어졌으며, 일식과 한식도 각각 68.5%, 56.5% 감소했다. 이는 서울 전체 같은 기간 업종 매출액 평균 증감률(중식 16.2%↓, 한식 15.2%↓, 일식 1.1%↓)보다 훨씬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자신의 외할아버지 때부터 이태원에 거주해서 본인을 ‘토박이’라고 소개한 김씨는 이태원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3년 전부터 매년 ‘이렇게 어려운 해도 있구나’ 하면서 지내왔다던 김씨의 눈은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다.

[천지일보=홍보영 인턴기자]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환전소에서 업주가 공부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환전소에서 업주가 공부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DB

백발의 모습인 김씨는 “3년 전에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옮겨지면서 옷·가방 등 쇼핑상권이 무너졌다”며 “하지만 그나마 외국인들이 외국음식들을 판매하고 음식점과 술집·클럽 등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어 외국인들도 여행을 오면 한번은 찾아보는 곳이 이태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이제는 코로나19로 인해 비행기가 뜨질 않으니 외국인도 없고 클럽과 유흥업소가 폐쇄돼 상권이 완전 죽었다”며 “권리금이 몇 억씩 하는데 그게 아까워 그냥 버티거나 계약기간이 남아서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둔 곳도 많다”고 했다.

이제는 밥 한 숟가락 먹으면서도 남의 돈(대출)으로 먹으니 스트레스가 쌓여 몸이 아프고 잠도 제대로 못 자 밤을 꼬박 새우는 날도 많다는 김씨는 주택담보 대출도 받지 못하고 재난지원금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 “‘8월 되면 끝나지 않을까’ 생각으로 버텨”

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부동산 규제가 강화돼 주택담보 대출이 막혔고 재난지원금 지원 서류 절차를 넣어봤으나 환전소는 금융업에 속해 해당되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돈을 가져왔다가 환전해가는 사람이 없고 이자만 붙을까봐 염려돼 돈을 다시 은행에 넣어뒀다고 했다.

그는 “10만원을 환전하면 100원이 남는데 외국인도 안 오고 내국인도 해외에서 들어오지 않아서 사람 발길이 뚝 끊겼다”며 “옆에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있는데 우리까지 가게 문을 닫으면 방해될까 봐 열고 있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가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앞서 소상공인연합회가 여론조사기관 이노베이션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0월 13일~11월 3일 소상공인 1000명(일반 소상공인 700명, 폐업 소상공인 300명)을 대상으로 ‘소상공인 사업 현황 실태조사’를 한 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여파로 10명 중 8명 이상 매출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천지일보 2021.1.2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가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앞서 소상공인연합회가 여론조사기관 이노베이션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0월 13일~11월 3일 소상공인 1000명(일반 소상공인 700명, 폐업 소상공인 300명)을 대상으로 ‘소상공인 사업 현황 실태조사’를 한 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여파로 10명 중 8명 이상 매출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천지일보DB

이어 “다른 일을 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나이가 많아 겁부터 난다”며 “올해 8월이 되면 (코로나 사태가) 끝날까 기대감으로 버티고 있다. 지금은 식물이나 아이들 관련 유튜브로 공부하고 있고 다른 집 택배를 받아주고 있다”고 자포자기한 듯 토로했다.

재작년만 해도 젊은이들로 북적였던 해밀턴 호텔 뒤 골목인 세계음식거리는 폐허를 방불케 했다. 곳곳에 임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집합금지 행정명령문구와 ‘폐업·휴업’ ‘장사하고 싶다’라는 표지까지 붙어 있었다.

◆ “항상 피해보는 사람은 ‘사회적 약자’”

점심때임에도 지나가는 사람을 보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음식점에는 테이블이 정돈돼 있었으나 불이 꺼진 곳도 많았다. 오토바이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코로나19로 이태원 상가가 어렵다고 하니 혹시나 해서 매물가격이 내려갔는지에 대한 문의가 많이 들어오지만 팔려는 사람들이 가격을 내리지 않아 거래량이 없어요.”

[천지일보=홍보영 인턴기자]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대로변에 텅빈 상가가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대로변에 텅빈 상가가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DB

이태원역에서 3분 거리인 한 중개사무실에서 윤택주(74, 남)씨가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세입자만 죽어나가고 있다”면서 “어렵게 되면 항상 피해보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다. 돈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간다”고 했다.

그는 현재 클럽·술집·식당 모두 도산 위기라며 9시까지 운영 금지라는 방역조치로 이태원은 장사 하나마나 똑같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사람들이 클럽을 가기위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카페 갔다가 밤새도록 먹고 마신다”면서 “하지만 클럽이 집합 금지 조치가 되고 음식점이 오후 9시까지 운영해야 하니 (가게를) 운영 하나마나”라고 설명했다.

◆ 홍석천도 폐업… “4억원 정도 손해 봐”

윤씨는 “인터넷뉴스에 홍석천도 폐업했다고 나오던데 그나마 홍석천은 머리를 잘 썼다”면서 “홍석천과 홍석천 누나가 건물 매입한 것을 제외하고 홍석천은 운영하던 6~7개 되는 가게를 작년과 재작년에 이미 다 정리했다”고 말했다.

다만 윤씨는 “클럽이 주축인 작은 골목 이태원은 코로나19로 인해 상권이 죽었지만 2026년부터 미군이 이전한 용산기지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비췄다.

한편 홍석천은 2시 탈출 컬투쇼에 출연해 “코로나19로 가게 하나로 손해 본 것은 전체적으로 하면 3억 5000만원에서 4억원 정도 된다”며 “올해 계획은 이태원에 복귀하는 것이다. 상인들과 함께 이태원에 미래지향적 콘셉트의 새로운 사업을 생각 중”이라고 언급했다.

[천지일보=홍보영 인턴기자]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해밀턴 뒷골목인 세계음식거리에는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해밀턴 뒷골목인 세계음식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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