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담임 이종락 목사) 담장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이종락 목사가 2009년 12월에 만들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보건복지부 “죄책감 덜어줘 ‘영아 유기’ 조장… 베이비박스 철거하라”
이 목사 “탁상공론 주장이다 어떤 대안도 없이 없애라니 ‘직무유기’”

[천지일보=최유라 기자] 지난 2월 지상파 방송을 탄 ‘베이비박스(baby box)’가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 베이비박스는 버려지는 갓난아기를 거둬갈 수 있게 한 작은 공간이다.

국내 처음으로 도입된 베이비박스는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 있는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돼 있다.

교회 담임인 이종락(57) 목사는 지난 2009년 12월에 담장을 뚫어 가로 70㎝, 높이 60㎝, 깊이 45㎝의 공간의 베이비박스를 만들었다.

담장 벽에는 ‘미혼모 아기와 장애로 태어난 아기를 유기하거나 버리지 말고 여기에 넣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아기를 두고 가면 벨이 울리며 이 목사가 아기를 방으로 데리고 간다.

현재 이 목사 부부가 키우고 있는 영아는 방송 후 5명이 늘어 22명이다. 아기를 맡겨달라는 전화가 많이 걸려오고, 베이비박스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나선 이들도 생겼다.

이 목사 부부는 정부의 지원 없이 후원자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에 150만 원이나 하는 베이비박스 설치비도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그는 2009년 6월경 체코의 한 산부인과에서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영아를 보호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그는 바로 해당 병원에 베이비박스 설치 관련 메일을 보냈고, 6개월 뒤에 전달받은 답장을 토대로 베이비박스를 국내에 최초로 도입했다.

이 목사는 “집 앞에 심심찮게 버려지는 영아들을 보니 추운 날씨에 자칫 잘못하면 사체로 발견되겠구나 싶었다”며 “영아들을 어떻게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지 연구하던 끝에 발견한 것이 베이비박스였다”고 밝혔다.

◆ 이종락 목사 “영아 유기 발언은 ‘직무유기’”

지난 2월 국내 언론과 방송은 베이비박스가 유기된 영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이 목사의 취지를 살려 긍정 보도했다. 그러나 방송 직후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죄책감을 덜어줘 영아 유기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며 “베이비박스를 철거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네티즌 찬반논란도 거세졌다. 찬성 측은 “생명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시도한 것이다” “베이비박스가 사라지면 버려진 아이들 목숨은 누가 책임지는가”라고 주장했다.

반대 측은 “유기 영아를 신고해 보호시설로 옮기는 것이 아이를 합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절차다” “나중에 아이를 찾거나 아이들이 부모를 찾을 때 추적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등 보건복지부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종락 목사는 <천지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말은 탁상공론식 발언이다. 누가 뭐라 해도 베이비박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지금도 영아들이 비참하게 숨을 거두고 있는 시점에서 어떠한 대안도 없이 베이비박스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베이비박스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코의 가톨릭병원에서 시행 중인 ‘베이비박스’, 독일의 한 산부인과에 설치된 ‘사랑의 바구니’, 일본 지케이(慈惠)병원에 설치된 ‘신생아 포스트’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영아를 유기하는 이들은 자신의 신상공개를 꺼리기 때문에 몰래 영아를 유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영아의 부모도 보호할 수 있는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또한 올바른 성(性)교육이 적극적으로 실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목사는 “우리나라 산부인과에도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정부가 바로 책임질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으면 한다”며 “영아가 낙태되지 않고, 유기되지 않는 세상이 올 땐 베이비박스도 필요 없을 것”이라며 영아들이 건강히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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