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종교갈등 이유로 치부돼

한국언론 보도않고 침묵·무시

뉴욕 인권단체, 강제개종규탄

NBC·ABC 등 美언론서 보도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20대 여성이 감금당한 채 학대를 받다 사망에 이른 ‘구지인 사건’이 올해로 3주기를 맞았다. 그러나 구지인 사건은 국내에서 ‘가정사다’, ‘종교문제다’라는 이유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외신 보도가 이어지는 등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며 한국에서 자행되는 종교탄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17일 천지일보 취재와 외신 등에 따르면 지난 9일자로 20대 여성 고(故) 구지인씨가 사망한 지 3주기를 맞았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예수교회)의 신도였던 구씨는 지난 2016년 7월 자신의 가족에 의해 44일간 전남 장성군 천주교 모 수도원에 감금돼 개종을 강요받았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구씨는 이듬해인 2017년 6월 청와대 신문고에 강제개종 피해사실을 알리며 강제개종 목사 처벌과 종교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호소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29일 전남 화순군 모 펜션에서 또 다시 감금돼 개종을 강요받았다.

2017년 12월 30일 오후 5시 40분. 전남 화순의 한 펜션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구씨는 아버지에게 다리를 잡힌다. 어머니는 그런 딸의 입을 틀어막았다. 호흡곤란으로 의식을 잃은 구씨는 전남대병원에 후송됐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했고 2018년 1월 9일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최종 사망 판정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7세였다.

◆구지인 사건, 전형적인 강제개종 사례

구씨로부터 생전에 신변보호자로 위임받았다는 김모씨는 이 사건의 배후에 이단상담소 목회자가 관여하고 있다며 이들이 부모에게 불안을 조성해 개종을 강요하고, 부모 뒤에 숨어 개종을 교사한다고 강조했다. 구씨의 사망 원인이기도 한 ‘강제개종교육’은 주로 ‘이단상담소’가 주축이 돼 자행된다.

이단상담소 소속 목사가 부모로부터 돈을 받고 부모에게 납치·감금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이후 부모가 모든 환경을 만들면 그때 투입돼 개종교육을 진행한다. 치밀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탓에 공권력은 개종 중 발생하는 사건을 단순 가족사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故 구지인씨가 질식사를 당한 전남 화순의 모 펜션. 펜션 창문엔 못이 박혀 있어 열리지 않았다. 구씨는 강제개종 장소로 추정되는 이곳에서 지난해 12월 30일 질식상태로 발견됐으며 지난 1월 9일 최종 사망 판정을 받았다. ⓒ천지일보
故 구지인씨가 질식사를 당한 전남 화순의 모 펜션. 펜션 창문엔 못이 박혀 있어 열리지 않았다. 구씨는 강제개종 장소로 추정되는 이곳에서 지난해 12월 30일 질식상태로 발견됐으며 지난 1월 9일 최종 사망 판정을 받았다. ⓒ천지일보

 

◆‘한국의 강제개종’ 외신·국제사회 주목

구씨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2018년 2월 전국 각지에서 강제개종 목사 처벌을 요구하는 12만명의 시민들이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었다. 시위는 해외로도 이어졌다. 같은 해 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에선 1000여명이 참여해 구씨를 추모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같은 달 18일(현지시간) 뉴욕에선 100명이 넘는 인권단체회원들이 강제개종 규탄시위를 벌였다.

외신은 즉각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2018년 2월 19일 미국 3대 방송 NBC, CBS(Columbia Broadcasting System), ABC를 비롯한 221개 언론이 ‘대한민국, 올림픽 중 대규모 인권운동(South Korea: The Olympic Games Amid Large-Scale Human Rights Protests)’이라는 제목으로 구지인 사건과 한국과 해외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인권운동을 보도했다.

2018년 강제개종을 당하다 목숨을 잃은 구지인 사건은 국내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 이후 해외 언론의 대대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후 미국 시민들은 뉴욕타임즈에 강제개종 철폐를 촉구하는 광고를 냈고, 학자들의 이목도 집중됐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강제개종 금지 광고(왼쪽). 뉴욕타임즈에 실린 강제개종 금지 광고 관련해 보도한 185개 매체 중 일부 리스트. ⓒ천지일보 2020.12.10
2018년 강제개종을 당하다 목숨을 잃은 구지인 사건은 국내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 이후 해외 언론의 대대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후 미국 시민들은 뉴욕타임즈에 강제개종 철폐를 촉구하는 광고를 냈고, 학자들의 이목도 집중됐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강제개종 금지 광고(왼쪽). 뉴욕타임즈에 실린 강제개종 금지 광고 관련해 보도한 185개 매체 중 일부 리스트. ⓒ천지일보 2020.12.10

 

◆美퓨리서치센터, 강제개종 사건 연구·발표

강제개종 사건은 국제 연구기관에 의해 지표화 되기도 했다. 미국의 비영리 연구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8년 종교에 대한 ‘사회적 적대 행위’가 ‘낮은 범주’에서 ‘중대한 범주’로 상승했다.

이 연구는 각국 내에서 종교에 대한 적대적 행위의 정도를 비교·분석한 것으로, 해외에서도 강제개종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퓨리서치센터는 한국이 ‘중대한 범주’로 상승하게 된 요인으로 구지인 사건을 꼽았으며, 1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강제개종 반대 시위를 벌였다고 소개했다.

미국의 비영리 연구조사기관인 퓨리서치 센터가 지난달 10일 발표한 '종교와 관련된 사회적 적대관계의 변화' 연구 보고서에서 한국의 강제개종 상황이 언급됐다. 해당 내용 화면캡처. ⓒ천지일보 2020.12.10
미국의 비영리 연구조사기관인 퓨리서치 센터가 지난달 10일 발표한 '종교와 관련된 사회적 적대관계의 변화' 연구 보고서에서 한국의 강제개종 상황이 언급됐다. 해당 내용 화면캡처. ⓒ천지일보 2020.12.10

 

◆‘기성교단 입김 작용해 靑무대응’ 의혹

일각에선 청와대와 사법당국 등 관계부처가 기성교단의 영향력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구씨 사건 이후 ‘강제 개종 금지법을 제정해달라’는 청원이 등장해 14만명이 동의했지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삭제돼 논란이 인 바 있다.

이같이 정부가 강제개종을 묵인하고 있는 동안 강제개종으로 울고 있는 제2, 3의 구지인씨는 지금도 대한민국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천지일보=박주환 기자] 대전시청 남문 앞에 28일 정오, 운집한 2만여명의 강제개종피해인권연대(강피연) 대전·충청지부 회원과 시민이 궐기대회를 열고 ‘종교차별금지 및 구지인법(강제개종 금지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한 뒤 강피연 피해자 고(故) 구지인씨의 영정을 들고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8
[천지일보=박주환 기자] 대전시청 남문 앞에 28일 정오, 운집한 2만여명의 강제개종피해인권연대(강피연) 대전·충청지부 회원과 시민이 궐기대회를 열고 ‘종교차별금지 및 구지인법(강제개종 금지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한 뒤 강피연 피해자 고(故) 구지인씨의 영정을 들고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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