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머 씨, 한국민 피해 있을까 뒤늦게 우려

(디케이터<미국 일리노이주>=연합뉴스) 1978년 경북 칠곡군 왜관의 주한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가 든 드럼통을 묻었다고 증언한 전 주한미군 병사 리처드 크레이머(53)씨는 당시 고엽제를 파묻은 작업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강이 흐르고 있는 줄은 뒤늦게야 알았다고 25일(현지시간) 밝혔다.

1980년에 전역한 크레이머씨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소도시 디케이터에서 아내, 아들, 그리고 고양이 한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직업은 한국 파견근무시절과 마찬가지로 버킷로우더(bucketloader) 기사지만 귀와 발, 허리 등 아픈 곳이 많이 점점 일을 많이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날 한적한 시골마을 자택을 찾아간 기자를 무표정하게 맞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한국 근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사진 촬영도 허가해줬다.

크레이머씨는 "고엽제 드럼통을 묻을 당시에는 미군 부대에 근무하면서도 근처에 강이 있는 줄 몰랐는데 나중에 이 일이 문제가 되면서 인터넷 위성사진을 통해 당시 지역을 검색해보니 가까이에 강이 흐르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 별 생각없이 드럼통을 파묻는 작업에 동원됐지만 이후 이 드럼통에 든 고엽제가 새어나와 강 등으로 흘러들어 인근의 한국민들이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크게 걱정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 군부대에서 발간된 앨범을 보여주면서 이번 일을 함께 증언했던 스티브 하우스나 로버트 트래비스 등과 함께 한국도 방문하고 싶다고 밝혔다.


다음은 크레이머씨와 일문일답.

--한국 근무 당시 고엽제 드럼통을 파묻었다고 증언했는데..

▲난 당시에도 버킷로우더 오퍼레이터였다. 명령에 따라 드럼통을 묻는 작업을 한 걸 기억한다. 난 이 작업에 한 번 동원됐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250개 가량의 드럼통을 묻었다. 난 주로 중장비로 드럼통 위에 흙을 덮는 역할을 했다. 스티브 등이 땅을 파내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원된 작업인원이 6명으로 보도가 됐는데 맞나?
▲워낙 오래된 일이어서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여러번 작업을 한 스티브의 말이 6명이라고 했다. 난 그중 두명은 누구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 당시 작업할 때 사병 말고 장교도 있었나?
▲현장에는 없었다. 장교가 항상 작업장에 지켜 서 있던 상황은 아니었다. 우리 공병부대 장교가 운전병과 함께 지프를 타고 작업장을 둘러보러 왔다 간 것으로 기억한다.

--누가 구체적으로 이 일을 지시했는지 알 수 있나.

▲사병들이야 바로 윗선의 지휘계통 명령을 받고 하는 것이니 그 위에 누가 처음 이런 지시를 했는지는 모른다. 알다시피 군에서는 여러 단계가 있으니까.

--고엽제 드럼통은 모두 새것이었나? 혹시 쓰다 남은 것을 버린 건 아닌가.

▲쓰다 남은 것 같지는 않다. 모두 사용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내용물이 꽉 차 있었다. 나는 증장비를 운전했기 때문에 직접 드럼통을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묵직한 것으로 보였다. 55갤런 들이 드럼통이니까 하나에 200㎏ 넘게 나갈 것이다.

--이 고엽제가 새어나가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나.

▲당시에야 군인이 명령받고 하는 일이니까 별 문제의식이 없었다. 하지만 한참 뒤에 만일 이 고엽제가 새어나가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나중에 위성사진 보니까 근처에 강도 흐르고 있더라.(캠프 캐럴 옆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우린 그런 줄도 몰랐는데 지도상에 보니 꽤 가깝게 나와 있었다. 그렇다면 더욱 큰 문제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본인도 몸이 안좋다고 들었다. 어디가 불편한가.

▲귀가 안좋아서 보청기 끼고 살고, 군 복무 시절에도 발이 부어서 군화를 못신고 테니스화를 신고 다녔다. 허리도 안좋다. 각각 장애등급 10% 씩을 받았다.

--정부에서 그런 질환에 대해 보상을 해주었나.

▲군에서는 아프니까 서울로 후송돼 군 병원에 몇 달에 걸쳐 여러차례 진료를 하고 약도 바꿔 가면서 먹어봤지만 무엇 때문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고엽제를 묻은 이후에 아프게 됐지만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다고는 병원에서 얘기하지 않는다.

--방문하기 전에 전화를 계속 해도 안받던데..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번 증언이 지역방송에 나간 이후로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지만 딱히 뭐라 할말도 없고 당시 일이 기억도 잘 나지 않아 응하지 않고 있다.

--이번 일로 미 정부와 접촉한 적이 있었나? 스티브 하우스 씨는 당국 관계자와 면담도 했다고 하는데.

▲없다. 워싱턴D.C라며 전화 자동응답기에 메시지가 남겨진 것은 있었는데 내가 무시해버리고 말았다. 언론에서도 연락이 많이 오는데 안받고 있다. 직접 찾아온 건 당신이 처음이다.

--군 제대 이후 한국에 가본 적은 있나?
▲없다. 제대후 30년이 넘었는데 한번 가보고 싶기는 하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 가보고 싶다. 사진을 보니까 한국은 엄청나게 달라졌더라. 논밭이던 지역에 고층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내가 일했던 당시와는 비교가 안되게 발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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