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여의도 63아트에서 바라본 도심 아파트단지. ⓒ천지일보 2020.11.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여의도 63아트에서 바라본 도심 아파트단지. ⓒ천지일보DB

뒤늦게 법 강화했으나 피해구제 대책은 없어
피해자들 “지역주택조합법 아예 폐지해야”
중화지역주택조합 사기분양 첫 판결, 2심 진행중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지역주택조합 제도가 사기분양의 온상이 되면서 내집 마련을 꿈꾼 서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해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기피해가 발생했고, 현재도 피해는 늘어만 가고 있다. 지역주택조합의 허점을 이용한 분양사기로 인해 서민들의 피해가 커지면서 정부는 뒤늦게 법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미 피해를 본 서민들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구제 방법조차 논의되지 않고 있어 피해자들은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지난해 7월 21일 정부는 주택조합 조합원의 재산권 보호 및 사업추진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주택조합 발기인의 자격기준, 조합가입 신청자의 가입비 예치 및 반환, 사업지연시 해산절차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19년 4월 20대 국회에서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홍근 의원이 지역주택조합의 조합원 모집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1년이 지나서야 겨우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지역주택조합은 서민들의 내집 마련을 돕기 위한 제도인데, 지역 주민들이 조합을 만들어 함께 땅을 사고 시공사를 선정해 집을 짓는 식으로 운영되는 일종의 아파트 공동구매다. 성공만 한다면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지만, 실제 입주율이 20%대에 불과할 만큼 실현이 어렵다. 게다가 개정 이전에는 조합설립 인허가 기준이 허술해 사기분양 등의 불법이 성행했다. 이를 제재할 수단도 별로 없었다.

특히 지역주택조합 설립과정 중 토지사용승낙서는 사기분양을 할 수 있는 날개옷이나 다름없다. 총 가구 중 60% 가구가 승낙서에 도장을 받아오면 지자체 주택과가 인허가 승인을 해준다. 주택조합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내집을 마련한다는 꿈을 안고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고, 지자체에서는 유령조합이라도 제대로 된 확인없이 허가를 내주는 허점이 있었다.

또한 시공사가 선정되기도 전에 유명 건설사 브랜드를 시공 예정사로 광고를 함으로써 서민들은 그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갖고 참여하게 돼 결국 속수무책으로 사기를 당하게 된다. 개정안에는 시공사가 선정되기 전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문구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관내 지역주택조합 전체에 대한 실태조사에 처음으로 나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발생된 피해는 물론 계속해서 발생되는 피해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피해자들은 지역주택조합법 자체를 폐지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이미 발생된 피해액에 대한 구제대책을 바라고 있다.

이미 전국적으로 피해가 상당한 가운데 10곳 안팎의 검찰청에서 지역주택조합 사기 사건을 집중 수사 중이지만 아직 제대로 진행되는 곳은 소수에 불과하다.

2018년 7월 25일 중화지역주택조합 피해자연대(위원장 김성덕)가 서울 북부지방검찰청 후문에서 검찰조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19
2018년 7월 25일 중화지역주택조합 피해자연대(위원장 김성덕)가 서울 북부지방검찰청 후문에서 검찰조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5

전국 지역주택조합 분양사기 사건 중 유일하게 첫 판결이 나온 서울 중화지역주택조합 사건은 업무대행사 대표 백모(69)씨가 103명으로부터 150억원대 조합비를 걷어 이를 편취·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8월 판결난 1심(서울북부지법)에서는 17번의 재판을 통해 검찰이 백씨에게 징역 17년에 벌금 30억원, 추징금액 107억원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일부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하면서 징역 11년을 선고하고 88억 9200여만원의 추징만을 명령했다.

백씨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중화지역 사업구역 내 토지사용승낙률을 부풀려 곧 아파트를 분양할 것처럼 속여 조합원을 모집하고 이들 103명으로부터 약 66억원을 받아 편취하고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중화지역주택조합 등에서 조합자금 약 90억원을 빼돌려 유흥비 등에 탕진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2심(서울고등법원)에서 검찰은 일부 무죄로 나온 것을 모두 유죄로 판단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며 1심과 같은 징역 17년에 벌금 30억원, 추징금액 107억원을 구형했다. 2심 판결은 이달 28일 오후 2시에 결정된다.

검찰 측은 2심의 쟁점으로 다뤄진 토지매입 여부 다툼과 관련해 “법적으로 토지를 완전히 매입한 것이냐 확보한 것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이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곧 피해자들은 토지 매입과 확보의 차이를 구분없이 당연히 입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조합금을 계속 분납했던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브랜드 건설사를 시공 예정사처럼 사용한 것도 아파트 계약에 중요한 기망요소에 해당된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백씨 변호인 측은 건설브랜드를 시공예정사로 사용하는 것은 관행이기 때문에 기망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아무리 관행이라도 피해자들은 건설사 브랜드만 보고 더 신뢰를 가지게 돼 아파트계약을 망설임 없이 했을 것이고, 결국 피해로 이어졌기 때문에 기망요소에 충분히 해당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성덕(59, 여) 중화지역주택조합 사기분양 피해대책위원장은 천지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피해자들은 내집 마련을 위해 평생 모은 돈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위기에 처했다. 정부의 지역주택조합 정책이 수십만명의 피해자와 수십조원의 피해액을 발생하도록 했다는 것을 전 국민이 알도록 법원의 공정한 판결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는 지역주택조합법을 즉각 폐지하고, 분납금 피해금을 돌려받을 법안과 사기범에 대한 더 강한 처벌을 내릴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중화지역주택조합 사기사건 재판은 비슷한 방법으로 지역주택조합 피해를 입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재판에 참관하고 있다. 1심 선고공판때 참관했던 하용영(63, 남) 구로지역주택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 지역도 847명이 약 460억원 피해를 봤다. 2020년도에 입주한다 했는데 현재 아직까지도 1%도 진행이 안됐다. 대부분 무주택 서민들이 계약했는데 전국적으로 사기유형이 비슷하다. 조합원들은 힘이 없고, 가해자들은 실력 있는 변호사들을 쓰기 때문에 국회와 정부가 나서서 서민들의 힘이 돼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하 위원장 역시 지역주택조합법을 즉각 폐지할 것을 촉구했다.

지역주택조합 피해자들은 전국적으로 연대해 지역주택조합법 폐지와 분납금 피해금 구제방법 마련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서울고등법원 ⓒ천지일보 2021.1.9
서울고등법원 ⓒ천지일보 20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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