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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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라 하면 그리스신화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여러 나라, 여러 지방에 있는 수많은 신화 가운데서도 유독 그리스신화가 본령(本領)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 자체 내용이 풍부해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설이 따르긴 해도 우주 창조를 비롯해 신들의 탄생, 영웅들의 이야기 등이 다채로우면서도 종교적이나 정치․문화적으로 상징을 주는 내용들이 그리스 신화에는 수없이 등장한다. 그 많은 내용 중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라는 교훈이 나오는바, 아테네 영웅 테세우스가 자신의 아버지인 아테네 왕을 찾아가는 길에서 만난 악질적인 괴한 다마스테스를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대목과 그 과정에서 생겨난 교훈적 이야기다.

괴한 다마스테스를 ‘프로크루스테스’라고도 부르는바 이 별명은 ‘망치로 쇠를 두들겨 판판하게 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괴한이 강가에 여관을 차려놓고 강도짓을 일삼았는데, 길옆을 지나는 행인을 강제로 붙잡아 여관방 쇠로 만든 침대에 누이고서는 손님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 키를 잘라내고, 작으면 침대에 맞춰 늘려 죽이는 등 추악한 악행을 일삼았던 것이다. 악행으로 소문난 그 괴한도 마침내 영웅 테세우스에게 잡혀 자신이 저지른 악행과 똑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고야 말았다. 그 후 아테네의 영웅 교훈담에서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나왔으니 ‘자신이 세운 일방적 기준이나 아집에 맞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억지로 맞추려는 것’에 빗댄 말로 ‘짐이 곧 국가’라던 루이14세의 만용조차도 여기에 얼비쳐지기도 한다.

비단 신화에서가 아니라 현대 우리사회에서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가져다주는 교훈과 흡사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해 국민들에게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신이 최고라는 망상에서 헛된 명망을 바라는 정치인 중에 그런 현상들이 더러 있는바, 이들은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 고관들로써 대개가 권력자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직위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권리, 의무인양 생각하고 만사를 마치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처럼 자신의 기준에 맞춰 처리하고서는 그 결과의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으려 온갖 변명을 늘어뜨린다.

국민 안녕을 위해 신명 바쳐 일한다는 정치인 가운데 그런 류의 작자들이 여럿 있다. 현재 피고인의 입장에서 국회 법사위원을 수행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시민단체가 고발했거나 검찰로부터 수사선상에 떠오른 인물들이 검찰개혁만이 살길이라는 듯 검찰공격에 앞장서고 있으니 무언가 켕기는 게 있었을까? 아리송하다. 새로 지명된 법무부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면 바로 속행되는 법정에서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받는다고 하니 행여 법무부장관으로 임용된 후라면 사상 처음으로 피고인 법무부 장관이 출현되는 셈이니 문재인 대통령이 장담한대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도래되는 참으로 희한한 세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할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말이 나왔으니 경질설과 사의설이 무성한 가운데 한시적 장관직을 수행하는 추미애 법무장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추 장관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법무행정사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만들어낸 그 장본인인가. 자신의 위업(偉業)이라 독단할지 모를 3회에 걸친 검찰총장 직무배제와 총장 징계 요구 등은 위험한 업보의 위업(危業)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위법성이 일단 드러났으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음직한데 자신의 SNS를 통해 쏟아내는 말의 성찬은 당당하고 화려했다. 여기에 시인들의 시 구절까지 줄줄이 인용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어이가 없고 정작 시인들도 할 말을 잊었을만하다.

현재 우리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과정에서 보이고 있는 서울동부구치소 사례는 인재(人災)라 아니할 수 없다. 법무부가 관리하는 단일 수용시설에서 코로나19 발병 이후 최대 확진자가 나왔으니 이는 명백한 정부의 잘못이다. 강제격리 시설인 구치소의 수용자가 확진되고 사망에 이르고 있음에도 법무부장관은 변명 일색인바, 지난 8일 국회 법사위에서 의원이 “동부구치소 집단감염은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에 대해 추 장관은 “당시 할 수 있는 조치를 적절히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초기 대응에 이상이 없었다”고 했는데, 적극 조치했으면 123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겠는가. 변명임이 확진자 수 증가에서도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정세균 국무총리가 (정부의) 한계가 있었다며 거듭 사과했음에도 추 장관은 적절히 조치했다는 말만 거듭하고 있으니 추 장관의 독야청청한 기세야말로 특이하다.

지금까지 추미애 장관이 국민에게 보여준 여러 행보에서 지난해 교수신문이 선정한 2020년 사자성어 ‘아시타비(我是他非)’의 절정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아시타비적 관료관은 국민을 멍들게 하고 나라를 망치는 근원이 아니던가. 자신이 세운 일방적 기준이나 아집에 맞춰 국민의 생각과 행동을 억지로 맞추려하는 건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의 악행적 교훈에서도 익히 아는 것이다. 곧 갓끈 떨어질 신세에 언제까지 독불장군임을 고집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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