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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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며 받은 ‘한 살이 더 배달되었습니다’란 메시지는 전혀 유쾌하지가 않다. UN에서 청년의 나이를 65세까지로 정의했으니 그나마 위안 삼는다. 필자 또래 사람들에게 “젊은 시절 가장 안 썼으면 했던 돈은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대부분 ‘자녀 사교육비’라고 한다. 사교육비는 투자 대 효과 면에서 가장 위험하며 수익률이 대부분 마이너스인 묻지마 투자에 가까운 돈이다. 자녀에게 투자한 10여년의 사교육비를 다 합치면 아파트 한 채 정도 사줄 돈이 되는 집도 많다. 차라리 그 돈으로 우량주 주식을 샀다면 수익률이 10배는 됐다.

10여년 전까지는 학교에 야간자율학습이란 제도가 있어 학교가 사교육의 일정 부분을 감당했다. 야자가 끝난 10시 이후에 사교육 시킬 곳도 없고 아이의 체력도 감당 안 돼 학교 수업만으로 대학진학 준비가 가능했다. 그 후 학생인권조례가 생기고, 학생 인권을 이유로 학생을 학교에 강제로 잡아두지 못하도록 인권위원회의 권고까지 나오며 야자가 폐지됐다. 정규수업 외에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니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졌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업을 갖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학생을 둔 부모를 대상으로 물어봐도 사교육에 아이를 내몰았던 시기를 가장 많이 후회한다. 사교육에 올인해도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업을 갖고 행복하게 살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주위 엄마들과 경쟁에서 뒤처지기 싫고 학원의 장삿속에 엄마들이 휘둘려 아이들을 학원 뺑뺑이 시키니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 공부는 마음먹기 나름이다. 학원에 가야 공부가 된다는 건 의지가 약한 것이다. 공부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인강으로 전국 어디에서도 공부할 수 있다. 아이의 공부할 의지를 길러 주는 게 우선이다.

사회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허드렛일마저 하기 힘든 세상이 됐으니 사교육 시키지 말고 대학을 보내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학 졸업장을 자신 있게 내밀 수 있는 대학이 아닌 80%가 진학하는 대학을 보내려면 굳이 많은 사교육비를 들이지 말란 이야기다. 모든 학생이 사교육을 받아도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할 확률은 무척 낮다. 그렇다면 내 아이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판단해 공부에 소질이 보인다면 과감히 투자해야 하지만, 반대라면 투자를 줄여야 한다.

확률도 부족하고 공부에 소질도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막대한 투자를 하는 건 부모의 노후마저 저당 잡히는 행위다. 처음에 모르고 투자했더라도 중간에 수익률을 점검하고 투자를 계속할지 중단해야 할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원하던 수익률이 나오지 않으면 자녀와 갈등을 빚게 되고 부부 사이마저 심각하게 갈라진다. 학창시절은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행복하게 인생을 살 수 있는 기초를 다지고 가족과 추억을 쌓는 시기다. 오로지 대학진학만을 목표로 사교육으로 모든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아깝다. 공부에 소질이 없다면 다른 방향으로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게 부모 역할이다.

필자가 대학에 진학했던 80년대 초의 대학 진학률은 30%대였다. 지방 국립대학은 그 지역의 수재급 인재들이 진학했다. 현재는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어 등록금만 있으면 다닐 수 있는 대학이 널려 있다. 대학이 수업료 비싼 고등학교나 마찬가지 수준이다. 기껏 평생 허리띠 졸라매며 사교육 시켰는데 일명 지잡대라 불리는 대학에 진학해 4년간 대학 학비를 또 내야 한다면 사교육비라도 줄이는 게 현명하다. 아니면 기술 배울 수 있는 2년제 대학을 진학해 대학 학비라도 줄여야 한다.

자녀 교육은 대학진학이 아닌 경제와 인성교육에 중점을 둬야 후회가 없다. 어릴 때부터 돈의 중요성을 알고 저축하는 습관과 건전한 소비습관을 길러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녀에게 적당한 결핍을 주면서 키워야 경제를 이해한다. 아이가 원한다고 모든 걸 다해주면 슬럼프가 올 때 견디지 못하고 좌절한다. 노후까지 저당 잡혀 돈 끌어모아 유학까지 보냈더니 돌아와서 고령의 부모를 나 몰라라 하는 자식으로 인해 불행한 노년을 사는 사람도 봤다. 인성교육이 부족했던 탓이다. 자녀 사교육비 대느라 노후 준비를 제대로 안 해 자녀에게 부양 부담을 주면 자녀에게 외면당한다. 사교육도 부모의 노후가 문제가 없는 선에서 지원해야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와 대화를 통해 사교육을 줄여야 가계도 여유 있고 가족도 행복하다. 어릴 때부터 인생을 독립적으로 사는 아이들이 사회에서도 승자가 될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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