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제공한 사진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8차 대회 4일 차 사업총화 보고를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미국에는 적대 정책 철회를, 남측에는 남북 관계 합의 이행을 강조했으며 핵잠수함 개발을 공식화하고 자력갱생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5개년 계획을 제시했다. 2021.01.09. (출처: 뉴시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제공한 사진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8차 대회 4일 차 사업총화 보고를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미국에는 적대 정책 철회를, 남측에는 남북 관계 합의 이행을 강조했으며 핵잠수함 개발을 공식화하고 자력갱생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5개년 계획을 제시했다. (출처: 뉴시스)

美 ‘주적’이라면서도 대화 여지

“핵잠수함 개발 한다” 국방력 과시

“ICBM, 1만 5천㎞ 사정권 명중률 제고”

“남북관계 개선, 남측 태도 여부에 달려있어”

전문가 “핵 의지 재확인… 비핵화 없다는 것”

“3월 한미훈련연습 시험대, 北도발 가능성도”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북한이 9일 김정일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8차 대회에서 내놓은 대남·대미 메시지를 공개했다.

공개된 내용을 보면 미국을 겨냥해선 ‘최대의 주적’으로 규정짓고 핵능력을 계속 갖춰나가겠다고 밝히는 한편, 향후 북미관계는 ‘강대강·선대선’ 원칙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대북 적대정책의 철회를 요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신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군사적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면서도 대화 여지를 열어둔 셈이다.

남측에 대해서도 ‘남북합의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며 기존의 원론적인 입장을 재차 강조했는데, 전체적인 기조는 일단 바이든 미국과 남측 정부의 대응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정은 “美에 강대강·선대선 원칙”

이날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5~7일 진행된 북한 노동당 8차 대회 사업총화(결산) 보고에서 “새로운 조미(북미) 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면서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 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면서 “대외 정치 활동을 우리 혁명 발전의 기본 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방력 강화 방침도 거듭 확인했는데,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구체적인 계획까지 언급해 관심이 쏠렸다. 김 위원장은 핵 기술 고도화를 위해 전술무기를 개발하고, 1만 5000㎞ 사정권 안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명중률을 제고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다탄두 미사일 기술 완성이 마감 단계에 있으며 신형 핵잠수함 설계가 최종심사 단계에 이르렀다고 설명하는 등 각종 군사 부문 과제를 비중 있게 다뤘다. 북한은 당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가 가능한 3천t급 디젤 추진 잠수함을 건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핵추진 잠수함 도입 의사를 공식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그는 “(우리는)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 세력이 우리를 겨냥해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이날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대북 적대 정책을 철회하기 전에는 대화가 힘들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거에 불과하다”며 “바이든 정부에게도 강하게 요구 조건을 내걸고 일단 반응을 보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이 핵무력 완성을 제시하거나 고도화 의지 재확인, 첨단무기 개발 등을 언급한 것을 보면 더 이상 비핵화는 없다고 선언한 거나 진배없다”면서 “핵보유국으로서 지위를 공고히 하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인데, 앞으로의 협상 목표를 핵 동결이나 핵 능력 축소로 가져가려고 하는 게 아니겠느냐”라고 전망했다.

[서울=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가 10일 오후 방송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공개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서울=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가 10일 오후 방송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공개되고 있다.

◆“南, 합의 이행” 촉구

남측 정부를 향해서는 ‘남북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이 역시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합의 이행의 당사자로 나설 것을 촉구한 대남 기조와 맥락을 같이한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에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며 남북관계 개선 여지를 남겼다.

그러면서 “남조선당국의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 등은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꼬집고 “첨단 군사장비 반입, 한미연합훈련을 지속해온 문 정부가 한반도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보장하는 남북합의 이행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북한이 남측 태도에 따라 판문점 선언 당시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지만 뭔 소리를 하는지 물음표”라면서 “물론 본질적인 문제는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이라고 밝혔는데, 남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여지를 뒀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남광규 매봉통일센터장도 “북한의 입장은 아직 변함이 없다. 어떻게 나오는지 두고 보겠다는 것”이라며 “당장은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며 이후 정세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올해 3월에 있을 한미연합연습이 시험대가 될 수 있다”며 “북한이 조건을 내건 만큼 도발할 가능성은 낮지만, 훈련이 진행되면 미사일 카드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바이든 신임 대통령 측은 김 위원장의 대미 메시지에 대한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인수위의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노동당 8차 대회 사업총화 보고 보도에 관해 평하길 거절했다.

아직 바이든 당선인이 공식적으로 취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미 현안에 관한 언급을 피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현 행정부의 국무부 역시 논평은 없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7일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제8차 대회 3일차 회의가 열렸다고 8일 보도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뉴시스) 2021.01.08.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7일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제8차 대회 3일차 회의가 열렸다고 8일 보도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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