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전용복옻칠아카데미에서 칠예가 전용복 씨를 만났다. 옻칠의 명맥을 잇기 위해 그는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친환경소재 옻, 페인트 대신 천연 도장재로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지난해 7월이었다. 문화재청이 주최한 ‘전통공예의 산업화·세계화 심포지엄’에서 한 칠예가가 직접 옻칠한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옻을 입힌 제기와 상, 장롱은 수없이 보았으나 손목시계는 처음이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사람들도 신기한 듯 목을 길게 빼며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칠예가 전용복(59) 씨다. 전 씨의 소원은 ‘조선의 옻칠’이 역사 속에 파묻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과 늘 호흡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옻칠에 목숨을 걸었다고 할 정도로 옻을 연구한다.

지난 3일 청담동에 위치한 전용복옻칠아카데미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옻의 특유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향이 익숙하지 않은 터라 살짝 미간이 찌푸려지지만 이는 잠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천연의 향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러한 매력 때문일까. 옻칠에 대한 전 씨의 열정은 대단하다.

전 씨가 옻칠의 길에 들어선 것은 27세 무렵이었다. 그는 화가를 꿈꿨으나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옻칠을 배웠다. 비록 제기와 상에 옻칠을 하는 게 전부였으나 그는 옻을 현대·대중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현대적인 회화기법을 도입하는 동시에 사라졌던 전통 옻칠기법을 되살리려 노력했다.

그가 일본에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도쿄 메구로가조엔의 복원작업을 총괄하면서부터다. 메구로가조엔은 일본 내에서도 국보급 연회장이다. 그는 100여 명의 한국 옻칠장을 이끌고 연회장 건물을 복원했다. 이후 일본에 정착하면서 문화재 복원부터 다양한 창작품을 선보였다. 일본으로부터 귀화 요청을 받을 정도로 예술성과 실력을 인정받았다.

“일본을 뜻하는 제팬(Japan)에서 제이를 소문자(j)로 쓰면 옻이라는 의미입니다. 일본이 옻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라는 뜻이죠. 하지만 일본의 옻칠은 조선에서 넘어간 것입니다.”

전 씨는 ‘조선의 옻칠’이 고국에서 빛을 발했으면 좋겠단다. 이러한 이유로 23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봄 한국으로 돌아왔다. 바로크 C&F와 손을 잡고 인천에 연구소를 열었다. 이곳에서 그와 제자들은 옻이 친환경 도장재로 쓰일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

“옻은 보존력이 뛰어납니다. 팔만대장경이나 고구려의 벽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이유가 바로 옻 때문이죠. 옻은 만 년간 지속됩니다. 아울러 친환경적이죠. 연구 결과 옻은 보존력과 살균력이 뛰어나요. 또한 전자파를 흡수하죠. 옻은 인체에 유익한 도장재가 될 수 있습니다.”

옻의 재발견은 전 씨의 손에서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그는 순수예술뿐만 아니라 가구 등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에 옻칠을 접목하고 있다.

지난해 시연하면서 보여줬던 옻칠 시계는 옻이 실생활과 예술에 접목된 예다. 그가 4년간의 연구 끝에 ‘전용복 칠예시리즈’ 손목시계는 24개 한정으로 제작됐다. 최고가가 한화 8억 4000만 원에 달하지만 전량 판매됐다.

“20~25년산 옻나무에서 100㏄ 정도의 수액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자연이 주는 귀한 재료인 만큼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야죠.”

전 씨는 전통기법을 바탕으로 재료와 안료 등 소재를 자유롭게 선택한다.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옻칠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전통은 옛 것을 지키는 정신”이라며 “옻칠이 지속되려면 전통기법을 지키되 소재의 다양화 등 시대에 따라 변화되는 부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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