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최경주가 아시아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는 미국 최고의 신문 뉴욕 타임스 기사를 읽고 한 주 내내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기사에서 최경주가 구사하는 영어가 ‘Broken English’라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골프담당 후배 기자, 미국 골프 레슨프로 자격을 갖고 있는 후배 대학교수 등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했다. 모두들 기사의 배경에 대해 궁금해 했다.

기사 줄거리는 이랬다. 최경주가 연장 17번홀에서 3피트 8인치(1m 10cm) 퍼트를 파로 마무리해 훨씬 더 짧은 3.5피트(1m 5cm) 퍼트를 아깝게 놓친 미국의 데이비드 톰스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사실을 언급하며 그가 한 영어멘트가 ‘Broken English’라고 지적했다. 부연하면 그의 영어는 ‘영어가 아닌 영어’라며 우리식대로 표현하면 ‘콩글리시’라는 거 였다.

문제의 기사내용은 다음과 같다. “The 17th is very nervous, and the wind is blowing and the green is very quick.” 우리 말로 옮기면 “17번홀은 아주 신경이 쓰인다. 바람이 불고 그린이 매우 빠르다”는 내용인데 영어어법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던 것 같다. 주어 ‘The 17th’ 다음 ‘be동사’로 ‘is’를 쓰고 신경이 쓰인다는 형용사인 ‘nervous’로 영어표현을 한 것은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겨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문장을 제대로 표현을 하자면 “The 17th makes me very nervous”로 하는 것이 무난했을 법하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그린이 매우 빠르다는 다음 문장들은 어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의미전달에도 별반 어려움이 없다.

이 기사를 작성한 인물은 래리 도우맨으로 뉴욕 타임스 현직 골프담당기자이다. 백인 남성으로 미국 로욜라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지난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뉴욕 타임스 골프담당 기자로 활동한 뒤 캘러웨이사 부회장으로 10년간 골프사업을 했으며 2007년 다시 복귀했다. 플로리다 팜비치에 살며 미 PGA 투어를 취재를 다니는 베테랑 골프 전문기자다.

그럼 도우맨이 왜 최경주의 영어를 굳이 ‘Broken English’라고 했을까. 나름대로의 이유를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이번 대회는 미국 국적의 데이비스 톰스가 4라운드 18번홀에서 극적인 버디를 잡아 대회 30년 역사상 가장 짜릿한 공동 선두를 이뤘으나 연장 첫 홀에서 최경주보다 5cm 짧은 퍼팅을 실수, 보기(bogey)를 하는 바람에 우승을 내주었다.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은 18번홀에서 극적인 환희의 순간이 이내 실망으로 바뀌자 큰 아쉬움과 탄식을 토해냈다. 이런 분위기가 매끄러운 영어를 못하는 한국국적의 우승자 최경주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문법적으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자신감 있고 편하게 인터뷰를 하는 최경주의 영어실력을 굳이 깎아 내리고 흠집을 냈으니 말이다.

특히 돈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고급 스포츠인 골프에서 정통 영어를 하지 못하는 것을 미식축구나 프로농구에서 흑인들이 저급영어를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일부 엘리트주의 성향이 반영됐을 수 있다.

2000년 미 PGA로 진출한 이후 11년째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최경주는 이번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을 포함해 총 8차례 우승을 차지해 세계 상위권 선수로서 PGA에서도 인지도가 매우 높다. 미국인 응원단 ‘초이스 보이스(Choi̓s Bois)’가 있을 정도로 인기관리도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발군의 성적과 미국인들의 따뜻한 격려에 힘입어 최경주는 미국국적을 갖고 있지 않은 한국인으로서 영어 실력이 네이티브 스피커에 크게 못 미침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영어를 구사한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면서도 통역자 뒤로 숨는 미 프로야구의 이치로, 프로농구의 야오밍 등에 비교해 최경주는 ‘뚝심 영어’로 통역자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최경주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을 한 뒤 곧바로 한국으로 들어와 지난 주말 제주도 핑크스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SK 텔레콤 오픈대회에서 뉴욕 타임스 기사를 의식한 듯 “영어도 잘 못하는 이방인이 휘젓고 다니면 좋게 보이겠느냐. 그래도 안 되는 영어로라도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 하는 모습들을 좋게 봐주는 팬들도 많다”며 “국내 최연소 미국 PGA 골퍼 김비오(21) 같은 후배들은 영어도 아주 잘해 나보다 모든 여건에서 월등히 좋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골퍼 수십 명이 활동하는 미 LPGA에서는 한때 영어 테스트를 통과한 선수들에게만 출전기회를 허용한다는 규정을 만들려다가 다민족, 다문화 국가인 미합중국의 이상과 가치에 어긋난다는 명분에 밀려 백지화한 바 있다. 이번 최경주의 뉴욕 타임스 보도를 접하면서 골프를 비롯한 운동 그 자체는 전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만인의 언어라는 점을 미국 스포츠팬들에게 새삼 일깨워줄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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