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술 정치컨설팅 그룹 인뱅크코리아 대표

 

경찰관집무집행법 제2조를 살펴보면 경찰이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2조는 경찰관 직무의 범위를 규정한 것으로서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 경비․요인경호 및 대간첩작전수행,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교통의 단속과 위해의 방지, 기타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경찰권 발동의 요건으로서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대한 위해가 존재할 때 경찰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다원화된 사회적 현상은 경찰관직무집행법만으로 경찰권 발동의 요건을 설명하기에는 한계에 이른다. 예를 들어 헤어진 가족을 찾아준다던가 자살하는 사람을 찾아 방지하는 일이 그렇고 환경문제는 더욱 논란거리다.

이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서는 경찰권 발동에 대한 해석을 두고 경찰관직무집행법이 아닌 행정법을 통해 경찰행정의 범위를 설명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행정법의 시초가 경찰행정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어찌 보면 경찰권을 설명하기에 경찰관직무집행법 보다 행정법이 더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조차 범죄의 검거만이 경찰행정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매우 안타깝다. 현실적으로 ‘진급=범죄검거실적’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민들이 요구하는 경찰권 발동은 경찰관직무집행법상의 직무 범위뿐만 아니라 ‘국민의 행복과 생명․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모든 행위’까지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산가족 및 미아 찾아주기, 자살예방, 인권 또는 환경관련 문제를 취급하는 경찰들은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니 이 문제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부끄러운 현실에 놓여있다. 하루 평균 42.2명이 자살하고 있는 나라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예방을 위한 경찰행정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교통사고 사망률이 하루 평균 31명인 점을 감안한다면 음주단속에 쓰이는 예산이나 인력에 비해 자살예방은 존재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할 말이 없다.

경찰행정에 있어서 헤어진 가족찾기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를 잃어버리거나 헤어진 가족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조차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으니 말이다. 헤어진 가족의 심정이 어떤지를 헤아리는 것도 경찰행정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다른 기관이 개입하는 것보다 경찰행정이 개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며 효과적이다. 경찰행정은 비단 범죄의 단속과 검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 있어서는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는 것까지 확대 해석되는 경향이 높다.

남양주경찰서 이건수 경위는 지난 8년 동안 이산가족 및 월남가족, 고아입양 등 1551건의 가족 찾기 민원을 해결한 공로로 2010년 청룡봉사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지금의 경찰청은 여전히 경찰청 차원의 ‘헤어진 가족찾기’ 전문센터조차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저 남양주경찰서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이건수 경위와 같은 전문가가 본청에 10명만 있었어도 그동안 1만 5000여 가족이 상봉했었을 텐데 말이다.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이범오 경사는 지난 2년간 자살예방 및 구호 활동으로 78명의 목숨을 살렸다고 한다. 어찌 보면 사이버테러대응센터와는 무관해 보이지만 78명의 목숨을 살린 것은 7800명의 범죄자를 검거한 것보다 더 훌륭한 일이다. 말이 78명이지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찾는다 해도 위치 추적에서 구호까지 간단한 일이 아닐 텐데 말이다. 신속성과 정확한 판단력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23일 MBC 송지선 아나운서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송지선 아나운서는 서초동 모 오피스텔 19층에서 투신자살 했다고 한다. 그녀는 트위터에 자살을 암시한 글을 올려 한때 자살 소동이 있었는데 결국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끊은 것이다. 만일 경찰이 자살예방 관리시스템에 의해 자살을 지속적으로 관리했다면 미연에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미래의 경찰상은 실적중심의 범죄 검거율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과 신체․생명을 지켜주는 모든 행위로 확대 적용해야 한다. 이건수 경위나 이범오 경사처럼 남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묵묵히 헤어진 가족과 자살예방을 위해 뛰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경찰 내에서도 별로 알아주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두 분과 같은 경찰이 대한민국의 진짜 경찰임을 국민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 1500여 가족을 찾아준 경찰, 78명의 목숨을 살린 경찰. 그대들이 진정 영웅이 아니고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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