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지난밤 수도권에 폭설로 2~5㎝의 눈이 쌓인 가운데 7일 오전 배달업 종사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일터로 나가고 있다. ⓒ천지일보 2021.1.7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지난밤 수도권에 폭설로 2~5㎝의 눈이 쌓인 가운데 7일 오전 배달업 종사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일터로 나가고 있다. ⓒ천지일보 2021.1.7

“초보 라이더, 先생계 後안전… 폭설에도 평점 깎일까 출근”

“보험비 폭증에 갱신 안 해… 일부 라이더들 가입 엄두 못 내”

“라이더, 폭설에도 위험 안고 배달가는 이유, 배달수수료 2배”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갑작스러운 폭설로 도로가 혼잡한 가운데 누군가는 가정의 생계를 생각하며 오늘도 스쿠터에 올랐다.

경기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린 지난 6일 저녁 하늘은 깜깜했다. 진눈깨비가 바람에 흩날리는 것도 잠시, 함박눈이 시간당 2~3㎝로 내려 서울역 주변을 하얗게 만들었다.

사무실에서 함박눈이 내리는 광경을 보며 낭만에 잠긴 회사원도 있었지만,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세차장 직원들은 쌓여가는 눈을 보며 한숨을 쉬었고, 주유소 직원들은 마당 비로 연신 눈을 쓸어댔다.

각자가 나름의 이유로 분주한 가운데 눈발 사이로 빨간 스쿠터 한 대가 눈에 띄었다.

오토바이‧스쿠터 등을 타고 배달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라이더’라고 한다. 이들은 보통 고객과 가맹점을 이어주는 중간 매개인 배달 플랫폼의 요청(콜)을 받아 일한다.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7일 오전 배달용 스쿠터 타이어에 눈이 얼어있다. 지난밤 수도권에 폭설로 2~5㎝의 눈이 내린 가운데 배달업 종사자들은 스쿠터를 끌고 일터로 나간다. ⓒ천지일보 2021.1.7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7일 오전 배달용 스쿠터 타이어에 눈이 얼어있다. 지난밤 수도권에 폭설로 2~5㎝의 눈이 내린 가운데 배달업 종사자들은 스쿠터를 끌고 일터로 나간다. ⓒ천지일보 2021.1.7

눈길이 미끄러운지 스쿠터의 속도는 뛰어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느릿느릿했다. 배달 플랫폼의 로고가 붙은 탑박스를 얹은 스쿠터의 바퀴에는 눈이 엉겨 붙어있다.

각도가 약 20도의 오르막 경사로. 이미 속도가 줄어버린 스쿠터는 오르막에서 가속하지만 엉겨 붙은 눈 때문에 바퀴가 헛돈다. 결국 탑승자는 말을 듣지 않는 스쿠터에서 내리고 말았다. 이미 땅을 밟은 그는 연신 시계를 봤다. 라이더들에 따르면 배달에 늦으면 평점이 깎인다. 눈발은 거세져 머리 위로 쌓여 갔고 밤은 깊어만 갔다.

같은 날 오후 8시 배달기사노조인 유니온라이더는 페이스북을 통해 배달을 중단하라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폭설에 라이더들은 곳곳에서 넘어지고 있다”며 “지금 배달을 시키는 것은 살인과 다름없다”고 호소했다.

갑작스러운 폭설로 도로에서 크고 작은 교통 혼잡이 있었다. 서울 강남에선 차들이 제설 안 된 도로에서 3~4시간 동안 가다 서기를 반복했고, 눈길에 미끄러진 버스와 승용차 등 4대가 연속 추돌하기도 했다.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사고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누군가는 블랙박스의 사고 영상을 올렸고, 누군가는 자신의 부상을 촬영해 게시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라이더들의 배달은 계속 이어졌다.

일부 시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배달은 자신이 하고 싶으면 앱을 켜서 하는 것”이라며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비꼬았다. 하지만 라이더들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눈이 쌓인 도로를 달리는 것은 4륜차보다 2륜인 스쿠터가 바닥에 닿는 면적이 작아서 훨씬 위험하다. 이를 당사자들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라이더에겐 안전보다는 폭설에 올라가는 배달 수수료가 우선”이라고 했다.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지난밤 수도권에 폭설로 2~5㎝의 눈이 내린 가운데 7일 오전 배달업 종사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일터로 나가고 있다. ⓒ천지일보 2021.1.7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지난밤 수도권에 폭설로 2~5㎝의 눈이 내린 가운데 7일 오전 배달업 종사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일터로 나가고 있다. ⓒ천지일보 2021.1.7

배달경력이 6년인 이병환(45)씨는 “이 일을 쉬면 수입이 0원이다. 가정이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다면서 다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 눈 덮인 도로를 달리러 나가는 가장의 마음이다.

이씨는 플랫폼의 콜을 확인하며 스쿠터 타이어 주변을 점검했다. 그는 “차량과는 달리 사고가 나면 보험비가 400만~500만원으로 오르기 때문에 파손 정도나 변상금액이 정말 크지 않으면 갱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라이더들은 가입할 엄두를 못 내, 사고 시 보험처리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시선을 창밖에 두니 눈이 쌓여있었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밟을 때의 기분은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하지만 라이더들은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누군가가 밟아 놓은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스마트폰의 알람은 계속 울렸다. 플랫폼에서 콜이 들어왔다. 한 라이더는 “금액이 2배 가량 오른 것을 보면 위험을 안고 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창밖 날씨를 보며 한숨 쉬었지만, 이내 라이더는 스쿠터에 올랐다.

그렇게 본인의 생계를 위해 혹은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쌓인 눈을 밟지 않으려 애쓰면서 라이더들은 오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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