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미국 워싱턴 발 폭력사태 뉴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폭력사태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6일 미국 의사당 건물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난입해서 무려 4시간 넘게 미국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회의가 진행 중인데도 회의실 유리창을 박살내고 심지어 상원 의장석까지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의원들이 긴급 대피했으며 경찰이 최루가스까지 동원해서 폭력사태 진압에 나섰다. 심지어 주 방위군까지 투입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침 미 의회는 이날 오후 1시 각 주별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인증하고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을 법률적인 당선인으로 확정하기 위해 ‘상·하원 합동회의’를 개최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통령 선거 부정을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극렬 지지자들이 미 대선의 최종적인 절차마저 폭력으로 짓밟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나오고 사망자도 나왔다. 다른 후진국도 아닌 미국에서, 그것도 미국 민주주의의 본산인 미 의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정말 충격이다. 미국 민주주의의가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진 것은 초유의 일이다.

사실 미국 민주주의를 말할 때 4년 전 트럼프 대통령 당선 때도 미국의 총체적 위기를 경고하는 분석이 많았다. 링컨의 공화당이 어쩌다가 트럼프까지 연결될 수 있느냐며 미국 민주주의가 종언을 고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게다가 트럼프의 등장 그 내면에 축적된 미국 정치의 한계, 미국 경제의 위기 그리고 미국의 글로벌 위상 추락까지 더해지면서 말 그대로의 총체적 위기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예상이 적중된 것일까. 아니면 실체를 생생하게 보여 준 것일까. 트럼프의 4년은 딱 그 쓴 소리와 냉소 그리고 탄식대로 미국의 실체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오만하고 몰상식한 ‘거대한 폭력’ 앞에 국제사회도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놓치고 말았다. 탐욕과 독선이 앞서는 순간 갈등과 대결은 더 치열해졌다. 상식이 무너진 그 자리에는 ‘광기’가 들어섰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트럼프의 4년,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그 대미를 장식한 것이 이번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한 미 의회 폭력사태인 셈이다. 아니 미국 민주주의가 유린되는 바로 그 현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백악관 앞에서 모여 미 의회로 진입했던 그 길의 좌우에는 링컨 기념관과 매디슨 기념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와 영광이 온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이다. 그렇다면 시위대들이 그 거리를 지나 의사당까지 진입해서 미국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트위터에 “우리에게는 도둑맞은 선거가 있다… 이날을 영원히 기록하라”고 했다. 심지어 시위대 앞에서도 “우리는 도둑질을 멈추게 할 것”이라며 오히려 시위대의 의회 진입을 독려했다. 그리고 그들을 ‘애국자’라고 치켜세웠다. 몰상식을 넘어 ‘광기’에 가깝다.

오죽했으면 바이든 당선인까지 나서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폭력사태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했을까. 바이든은 시위나 폭력이라는 표현 대신에 ‘내란’이라고 규정했다. 사태의 엄중함을 직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이런 언행을 볼 때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로 교체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벼랑 끝에서 겨우 탈출 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과제는 너무도 무겁고 절박해 보인다. 트럼프의 4년이 망쳐놓은 내부의 갈등과 외부의 적대감을 한꺼번에 정상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금세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미국의 내부적인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마치 붕괴되고 있는 긴 터널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서 하루빨리 다른 출구를 찾아야 하는 그런 모양새다. 트럼프의 4년이 미국 민주주의의 유린으로 끝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바이든의 4년은 생각보다 더 가혹한 시련의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무너지고 있는 미국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세울 수 있을지 참으로 궁금한 대목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한 의회 폭력사태에 대해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벌어지는 쿠데타와 폭동을 생각게 하는 충격적인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그 밖의 전 세계 주요 언론들도 한 목소리로 오늘의 미국 정치를 개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한 때 민주주의 국가의 모델이요, 귀감이었던 미국 민주주의가 지금 이렇게 무너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끝은 무엇일까.

바이든 행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트럼프의 광기’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적폐 청산’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민주주의는 그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래야 미국 민주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의 임기 4년은 너무도 짧아 보인다. 게다가 세밀한 설계 없이는 금세 역풍에 휘말릴 수도 있다. 그래서 산 넘어 산이요, 끝이 보이지 않은 터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마치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트럼프의 4년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면 바이든의 4년은 생각보다 더 고통스런 시련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만일 바이든 마저 끝내 실패할 경우, 그 뒤에는 더 큰 비극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국 민주주의의 유린은 파시즘의 광기를 키워내는 토대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파시즘과 나치즘의 광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비극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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