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차에 실려가는 꽃

정호승(1950 -  )

모가지가 잘려도 꽃은 꽃이다
싹둑싹둑 모가지가 잘린 꽃들끼리 모여
봄이 오는 고속도로를 끌어안고 운다
인간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일만큼
더한 아름다움은 없다고
장의차 한쪽 구석에 앉아 울며 가는 꽃들
서로 쓰다듬고 껴안고 뺨 부비다가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마냥 졸고 있는
상주들을 대신해서 울음을 터뜨린다
아름다운 곡비(哭婢)다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장의차. 며칠간의 장례에 지친 상주들 차창에 머릴 기댄 채 졸고 있다. 장의차 한쪽에는 조화(弔花)들만이 깨어나 상주를 대신해서 울음을 터뜨리듯 놓여 있다. 모가지가 싹둑싹둑 잘린 꽃들. 슬프기 다기보다는 애처롭기 그지없다.
‘나’ 아닌 ‘누구’를 위해 울어야 하는 사람들. ‘나’ 아닌 ‘누구’를 위하여 웃어야만 하는 사람들. 그 옛날 주인이 죽으면 따라 울어주던 여자노비들, 그 곡비(哭婢)들. 봄이 오는 고속도로를 끌어안고 울고 있다. 어쩌면 상주들보다도 더 애처로운 그들. 달려도, 달려도 끝날 것 같지 않은 고속도로 위를 울며, 울며 달려가고 있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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