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유물 사진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1.6
우정 유물 사진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1.6

삶은 소를 담은 세 발 솥 ‘우정’

유물·민화 등 소 모양 잘 담겨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커다란 눈망울에 긴 속눈썹.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듬직해 보이는 소는 농경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였다. 선조들의 쟁기질을 도와줬고, 한가득한 등짐을 날라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십이지(十二支)의 두 번째 동물에 속했고, 고전문학 속에서는 충직·성실·용맹 등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했다. 또 ‘흰 소’는 예로부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고, 불교에서는 미륵불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 같은 소는 선조들의 삶 곳곳에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2021년 신축년(辛丑年)을 맞아 소를 표현한 유물, 민화 등을 알아봤다.

◆소 모양의 제기 유물

가장 대표적인 유물은 국가적으로 행하는 큰 제사에 쓰는 제기(祭器)인 ‘우정(牛鼎)’이 있다. 우정은 삶은 소고기를 제례 장소까지 옮기는데 사용한 준비용 제기다. ‘정(鼎)’은 세 발과 두 귀가 달린 솥을 일컫는데, 제기에 담는 희생(제례에서 제물로 바치는 동물)의 종류에 따라 우정·양정(羊鼎, 양고기)·시정(豕鼎, 돼지고기)으로 구분했으며, 각 동물 형태로 그릇을 만들었다. 우정의 발은 소의 머리와 발굽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뚜껑에는 ‘牛’자를 새겼다. 소는 특히 귀한 제물이라 종묘제, 사직제 등 가장 중요한 국가제례에서만 사용했다.

제사에 사용되던 소 모양의 술항아리인 '희준(犧尊)' (출처:국립고궁박물관) ⓒ천지일보 2021.1.6
제사에 사용되던 소 모양의 술항아리인 '희준(犧尊)' (출처:국립고궁박물관) ⓒ천지일보 2021.1.6

신에게 익힌 고기를 올려 대접하는 절차인 ‘궤식(饋食)’은 국왕이 친히 제사를 지낼 때만 진행하는 신성한 과정이다. 궤식을 마치면 신에게 바친 고기를 국왕이 다시 건네받는데, 이는 신이 제물에 복을 담아 인간에게 돌려주는 것을 의미했다.

이렇게 다시 받은 고기는 제례가 끝난 후 연회에서 왕과 신하들이 함께 나눠 먹거나, 혹은 정성스럽게 싸서 종친들, 신하들에게 나눠줬다. 이처럼 소를 비롯한 희생은 신과 국왕, 이어 백성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신에 대한 공경의 마음 그리고 신이 내린 복을 아래로 널리 베풂으로써 백성의 안녕을 바라는 지극한 마음이 담겨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우정(뚜껑 4점과 몸체 5점)을 소장 중이며, 이달의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정하고 4일부터 온라인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희준(犧尊)’도 눈에 띄는 소 모양의 제례 유물이다. 희준은 종묘제례나 향교 또는 서원의 제사에서 사용되는 술 항아리다. 예법에 관한 책인 ‘예서(禮書)’에 보면, 희준과 코끼리 모양인 상준(象尊)의 용도에 대해 언급해 놓았는데 “희준(犧尊)은 주(周)나라의 준을 본뜬 것이다. 소는 큰 희생(犧牲)이고, 기름이 향내가 나므로 봄의 형상에 적당하고, 코끼리는 남월(南越)에서 생산되니, 이것이 선왕께서 희준과 상준을 봄 제사와 여름 제사에 사용했던 까닭이다”라고 적혀 있다.

단원 풍속도첩 '논갈이'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1.1.6
단원 풍속도첩 '논갈이'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1.1.6

◆민화 속의 주인공

소는 우리 민화 속에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먼저 조선시대 화가인 김식(金埴)의 작품 ‘마른나무와 소’를 보면 우측 상단에 대나무, 난초와 바위가 있으며 중앙에 물소가 있다. 나무 아래에 서 있는 물소는 유난히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김식의 ‘누워있는 소’ 작품도 눈에 띈다. 누런색의 소는 잠시 앉아서 쉬는 듯 고개를 살짝 돌려 뭔가를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를 자세히 볼수록 더 매력적이다. 뚜렷한 눈매, 선명한 뿔의 색, 섬세한 소의 근육들은 마치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 나와서 들판을 뛰놀 정도로 생동감을 주기 때문이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담긴 ‘논갈이’ 그림도 유명하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대체로 소탈한 서민생활의 단면과 생업의 모습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또 당시의 사람들의 생활 감정을 한국적인 해학과 정취를 곁들여 생생하게 나타내 의미가 크다. 그림 ‘논갈이’는 한 쌍의 소가 쟁기를 끌고 두 명의 농군이 쇠스랑으로 흙을 고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대각으로 솟구치고 있는 소라든지 쟁기를 잡은 농부의 몸짓 등이 힘든 농사일을 말해준다.

그런가 하면 전국 곳곳에서는 무당굿놀이인 ‘소놀이굿’도 전승됐다. 동국세시기의 ‘입춘조(立春條)’에 보면 함경도 풍속에 입춘날이 되면 나무로 소를 만들어 관청으로부터 민가의 마을까지 끌고 나와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는 흙으로 소를 만들어 내보내는 제도를 모방해 농사를 권장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뜻을 나타내는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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