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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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6개월, 입양된 지 열 달 만에 온몸에 멍이 든 채 숨진 정인이. 검찰이 양부모를 재판에 넘기면서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한 대목에 사회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시민들은 정인양 생전 3차례나 경찰 조사를 받는 등 아동학대 정황이 있었지만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의 안이한 대처로 끝내 사망했다는 사실에 강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해 5월과 7월, 10월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정인양 학대 신고를 접수했으나 가해 양부모와 분리조치를 하지 않았다.

5월 첫 신고자는 정인양이 다니던 어린이집 교사였다. 정인양 몸 곳곳엔 멍자국이 관찰됐다. 교사는 의도적 폭행이라고 직감했다. 경찰에 출석한 양모 장모씨와 양부 안모씨는 아이에게 안마를 하는 과정에서 생긴 멍이라고 진술했다.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경찰은 내사종결 처리했다.

앞서 두 차례나 신고가 있었음에도 경찰은 정식 사건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정인양은 다시 부모 품으로 돌아갔다. 생후 15개월, 입양 당시인 생후 8개월 때보다 몸무게가 크게 줄어있는 상태였다.

정인이 생전 학대 사건을 경찰에 직접 신고했던 소아과 전문의의 말은 충격적이다.

“15개월 아기한테 맞는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다.”

‘구강 내 큰 상처’ ‘쇄골 골절’ ‘멍자국’ 등 아동학대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목격자들의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정인이는 양부모에게 학대당한 끝에 지난해 10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정인이의 사인을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라고 결론 내렸다.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정인이 사망 사건이 조명되면서 양부모와 경찰 등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또한 여성단체들은 정인이가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정인이 양부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인이의 피해, 현출된 증거자료만 보더라도 살인죄로 의율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인과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아동을 위해 공권력이 담당해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를 실행해야 한다. 아동학대 의심 시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인력 확충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하며, 아동학대범죄 신고 접수시 경찰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적극 협조 및 수사 개시 등이 필요해 보인다.

“아이를 떨어뜨렸을 뿐”이라고 주장한 양엄마가 왜 그리 의심받을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동학대치사죄는 가중 처벌을 해도 최대 형량이 징역 15년이지만, 살인죄라면 사형까지도 가능하다.

인간은 본래 소박하고 자유로운 세계 속에 존재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길이 있다. 그러나 심지(心知)에 집착할 때, 인간은 세계를 둘로 나눈다. 자신도 상대적 세계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타인을 상대적 세계 속에 밀어 넣는다. 이 말은 중국 사상 전반에 조예가 깊고, 오랜 시간 노자철학을 연구한 왕방웅 교수의 ‘노자, 생명의 철학’에서 나온 말이다.

물질 만능주의와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인간을 지배하고 돈 때문에 살인하고 돈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고 남을 외면하는 배타적 프레임 안에 갇혀있는 모양으로 우리는 살고 있다.

구멍이 뚫린 우리의 삶과 사회적 안전망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분노와 슬픔, 웃음과 즐거움 등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 감정을 꾹꾹 누르고 참다보면 절제하지 못한 우발적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대상이 성인이든 어린아이이든 타인의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존중해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도록 배려와 더불어 생명존중 교육 활동과 체계적 학습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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