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아동학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아동학대’ 3차례신고됐는데

경찰, 양부모 믿고 내사종결

되풀이만 되는 범정부 대책

실행되지 않은 정책도 있어

[천지일보=김빛이나·김누리 기자] ‘정인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경찰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 아동학대 관련 정책과 경찰매뉴얼이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인이 사건’은 지난해 10월 13일 생후 16개월 된 정인이가 입양된 지 271일 만에 양부모에게 학대를 받다 사망한 사건이다. 아동학대 가해자인 양부모가 정인이와 함께 입양 가족으로 다정하게 EBS에 출현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국민의 공분을 샀다.

사건을 조사한 서울 양천경찰서는 어린이집 교사와 소아과 의사의 학대 의심신고를 접수했음에도 양부모의 말만 믿고 3차례 내사 종결한 것도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형식뿐인 ‘가정방문·일제점검’

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아동학대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으며 대부분이 가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복지부가 발표한 ‘2019년 전국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가해자의 75.6%가 부모이며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학대가 79.5%에 이른다.

정부는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2년 간격으로 네 차례의 범정부 대책을 발표해왔다. 그러나 이는 이전 대책을 조금씩 보완하거나 반복하는 데 그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학대 아동을 파악하기 위한 가정방문과 일제 점검은 대책마다 들어가 있으나 대상과 기간이 한정된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떨어졌다. 아동학대 범정부 컨트롤타워는 한시적으로 운영하거나 검토 단계에서 사라졌다. 관계 기관의 협력 강화와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이용한 아동학대 감시 등의 내용은 매번 반복되고 있다.

발표만 되고 실행되지 않은 정책도 있었다. 학대 가해자에 대한 상담 교육 강화 법안은 법제화되지 않았고, 아동복지시설 인프라 확충 예산 반영방안은 이행되지 않았다.

대책을 세운 취지는 좋았으나 뒷받침할 예산·인력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학대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국에 61곳인데 비해 보호해야 하는 인원은 연평균 900~1000명 수준이다. 자연스럽게 정원을 초과해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 대부분이다. 정원이 초과하면 생활에 지장이 가는 것은 물론 안전사고가 나도 상해보험 등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매뉴얼 지키지 않은 ‘부실수사’

정인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 세 차례에 걸쳐 서울 양천경찰서에 학대 의심신고가 들어갔다.

첫 번째 신고 때는 아동보호 전문기관 관계자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경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내사 종결시켰다. 차량에 방치된 정인이의 모습에 양부모 지인이 두 번째 학대 의심신고를 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한 달 후 사건 현장의 CCTV를 요청했지만 이미 삭제된 후였다.

마지막 신고인 세 번째에는 정인이를 진단한 소아과 의사가 상처와 아이의 영양 상태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부모와 분리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져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함께 양부모 집에 찾아가 조사했으나, 입건조차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 ‘양부모가 분리조치에 대해 격하게 반발해서’ ‘아동학대에 대한 고의성이 없어서’라는 이유였다.

16개월 입양 아동을 학대한 혐의로 구속된 양어머니가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16개월 입양 아동을 학대한 혐의로 구속된 양어머니가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입양 관련 봉사를 해온 양부모에 대한 편견을 가진 서울 양천경찰서와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3건 모두가 ‘아동학대 혐의없음’으로 종결됐다. 입양모는 신고 될 때마다 증거가 될 휴대폰 내 사진과 동영상, 대화 기록을 삭제했다.

경찰의 ‘아동학대 수사 업무 매뉴얼’에는 가정 내 아동학대는 피해자 고소가 없더라도 직권 수사가 가능한 만큼 적극적으로 수사하라고 돼 있다. 보복과 재범, 증거인멸 염려를 판단해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는 원칙도 포함돼 있다. 정인이 사망 사건에서 경찰은 해당 매뉴얼을 모두 지키지 않았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정인이 사건’ 신고처리를 담당한 양천서 여성청소년과 과장 등 직원 12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예정이다. 이들의 징계 처분은 주의와 경고로 경징계에 해당한다.

◆靑청원에 사후약방문한 정부

‘정인이 사건’이 알려진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시민들이 관련법 강화와 관련자 처벌 등을 강하게 요구했다.

지난해 10월 19일 ‘세 차례나 신고돼 살릴 수 있었던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동학대 신고에 관한 법을 강화해주세요’라는 청원은 청와대의 답변 요건인 20만명을 넘어선 동의를 받았다.

청원인은 해당 글을 통해 “16개월의 여아가 30대 부부에게 입양된 후 3차례의 학대 신고가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는데 경찰은 신고 당시 학대로 단정할 정황이 없다고 돌려보냈다”며 “아동학대 신고 시 보다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제정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다른 청원인은 지난 11월 13일에 올린 청원글에서 3번의 학대신고에도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낸 서울 양천경찰서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며 “보육교사도 의료진도 학대가 맞다 하는데도 즉시 분리시키지 않았다.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며 아이를 사지로 몰고 간 공범”이라고 분개했다.

아동학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아동학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청와대 국민청원글의 답변인으로 나선 양성일 보건복지부 차관은 “아동학대 예방 당국자로서 어린 생명을 지키지 못해 안타까움과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부족한 부분을 점검하고 피해아동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두 번 이상 신고되는 등 학대가 강하게 의심될 경우 아동을 선제적으로 분리해 ‘학대피해아동쉼터’ 등에 보호할 수 있는 ‘즉각 분리제도’ 도입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한 ‘학대피해아동쉼터’ 15곳을 신설해 총 91곳에서 피해 아동을 보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해자 처벌 목소리 다시 일어

정부의 대책 마련과는 별개로 일각에선 ‘정인이’를 장기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에 대해선 ‘아동학대죄’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또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수를 늘리는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여성변호사협회(여성변회)는 4일 성명을 내고 “(정인이의) 양어머니 장아무개씨에 대해선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 양아버지 양아무개씨에 대해선 방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면서 “정인이의 피해, 현출된 증거자료만 보더라도 살인죄로 의율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늘리는 등 지자체의 아동학대 조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아동학대 의심사건의 초동조사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주로 맡고 있지만, 전국 229개 시·군·구의 100곳에만 배치됐으며 인력도 목표치의 65%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여성변회는 “67개 지자체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1명에 불과하고 행정직원이 순환배치로 해당 업무를 담당하게 돼 전문성 확보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한다”면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인력확충과 전문성 강화, 아동학대범죄 신고 접수 시 경찰과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적극 협조 및 수사개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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