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소의 해 서장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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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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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띠 해를 보내고 신축년 소띠 해를 맞았다. 지난해는 현대사에서 견디기 힘들었던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쥐는 곡식을 축내는 해로운 동물이기 때문이었을까. 나라 살림도 어려웠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힘들게 보낸 한 해였다.

소는 쥐와는 다른 동물이다. 소띠 해에는 쥐띠 해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예부터 소에는 ‘열 두 가지 덕이 있다’고 했다. 근면하고 과묵하여 우공(牛公), 혹은 대인(大人), 은자(隱者)에 비유되기도 했다.

고대에는 소가 농사 외에도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고구려 벽화를 보면 큰 소 한마리가 귀인의 수레를 끄는 그림을 찾을 수 있다.

권력자나 장군들은 위엄을 보이기 위해 투구 양머리에 쇠뿔을 장식했다. 치리자들을 가리켜 우두머리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우두성이란 이름을 가진 고대 성 유적들을 조사해 보면 대부분 왕들과 관련이 있다.

인정 많았던 고려 사람들은 소와 말을 도살하지 말자는 ‘우마도살금재법’을 만들기도 했다. 수족처럼 한 평생 부리는 소와 말을 어떻게 잡아먹을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었다.

이 법을 만든 장본인은 고려 원종 때 밀직사사 곽예(郭預)였다. 그는 고매한 인품의 문신이었는데 비만 오면 송도 용화지에 나가 우산을 받고 연꽃을 완상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경북 선산 문수산 아래 의우총(義牛塚)이 있다. 호랑이로부터 주인을 구하고 함께 죽은 소 무덤이다. 조선시대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다. 주인이 물리게 되자 소가 호랑이에게 달려들었다. 혈투 끝에 호랑이가 소의 뿔에 받혀 죽었다. 얼마 후 농부도 병을 얻어 앓다가 죽었는데 소도 따라 죽었다는 것이다. 관부(官府)에서 이 사실을 알고 죽은 소를 칭송하는 비석을 세워 주었다. 주인을 지킨 소야말로 우공(牛公)이란 칭호를 받을 만하다.

이름 있는 화가들은 소 그림을 많이 그렸다. 조선시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가운데에는 소가 밭을 가는 한가한 농촌 풍경도 있다. 소 등에 탄 소년이 피리를 부는 유유자적한 그림도 있다.

쥐의 해는 악몽 같은 한해였다. 여당은 4.15총선에서 대승리했으나 등잔 밑을 보지 못했다. 국정의 주요 추진상황이 헛바퀴를 돌았다. 법무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잇단 징계 시도는 법원에서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30%대로 추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데도 일부 여당인사들은 아직도 험담으로 민주주의 근간인 법치와 삼권분립의 기본 질서마저 무너뜨리려고 한다. 국민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이 다수당이라고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친 국민들은 지난 12월부터 영국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까지 생겨 공포에 떨고 있다. 바깥에 나가는 것을 꺼리고 9시만 되면 상가는 모두 불이 꺼진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단체는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힘들겠다고 전망했다.

신축년엔 소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홍수 때 소와 말이 같이 떠내려가면 소가 살아남는다는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고사가 있다. 소가 비록 우직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지혜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새해에는 정치부터 달라져야 한다. 오만을 버리고 우공의 겸손함으로 위민만을 생각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는 것이 정치의 본뜻 아닌가. 그래야 대한민국의 회생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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