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이어진 사내의 이야기는 이랬다.

아내의 한복 가게가 세 들어 있는 3층 건물에 불이 났다. 마침 아내는 급히 주문 맡은 옷이 있어 밤늦게까지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건물은 전소되었는데 아내의 시체는 나오지 않았다. 발화 시점은 1시 30분쯤이라고 추정을 하는데, 아내와는 1시에 통화까지 했다. 그 증거는 전화국 통화기록에도 나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하나님이 아내를 선택해서 천국으로 데려갔다고 여긴다. 이게 바로 ‘신 휴거’ 개념인데 하나님은 선인을 정해진 날짜, 시간에 맞춰 데려가는 게 아니라 이처럼 특별한 사고가 났을 때 아무도 모르게 데려가신다. 이와 유사한 사건 현장에서 이따금 유골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아내는 너무 착한 사람이다….

“제 아내라서가 아니라 정말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녀를 천국으로 데려간 겁니다. 고체인 드라이아이스가 기체화하듯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러나 보험회사에서는 아내의 유골이 없으니 보험금을 줄 수가 없다고 하네요. 보험금을 받으려면 먼저 아내의 실종신고를 낸 뒤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고, 그래서 법원의 실종 판결이 나와야지만 지급을 한다는군요.

하지만 저는 아내의 실종신고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면, 그렇게 되면 아내는 선인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 사람이 되어버리니까요.”
나는 사내의 이야기를 듣고는 입이 딱 벌어졌다.

결국 사내가 의뢰하려는 사건 요지는, 그의 아내가 3억짜리 생명보험을 하나 들어놓았는데, 그걸 실종신고를 내지 않고도 보험금을 받아 챙길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말이었다. 나는 황당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변호사들이 소송 의뢰를 받을 때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이 송사거리의 여부, 곧 ‘사건의 성립’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다. 그런데 설사 사내의 아내가 분명 화재 현장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진정 하늘나라로 올라갔다고 친들 ‘신 휴거’를 재판정에서 무슨 수로 증명을 하겠는가 말이다. 법이란 특히 실증이 중요하거늘!

그래서 나는 사내한테 단호하게 말했다, 미친 사람으로 신고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기고 어서 돌아가시라고. 이것이 사내와 나 사이에 있었던 만남의 전모였다.

결국 사내는 낙담한 채 그냥 돌아갔고 나는 그 해프닝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 뒤 1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신문을 보던 중에 박스 기사 하나가 나의 눈에 띄었다.
‘어느 노숙자 시신에서 3억짜리 보험증서 발견… 보험사에 문의해본 결과 이 보험증은 실종신고만 내면 언제라도 유효한 증서였다고 하는데….’

활자 하나하나를 마지막까지 읽는 순간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왔다.
#이 이야기를 나는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Y에게 했다. 혹시 그의 작품 활동에 무슨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서였다. Y는 제법 내공이 있는 소설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내는 아내가 사라지자 노숙자로까지 전락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는 왜 보험금을 타지 않았을까. 실종신고만 내면 3억이라는 돈이 굴러들어오는 것을, 노숙자가 되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말이야.”

나는 고개를 모로 꼬며 나지막하게 탄성마저 쏟아내자 이제껏 잠자코 듣기만 하던 Y가 입을 열었다.

“그게 바로 사랑이겠지. 자신의 아내를 선인으로 남겨두고픈 지순한 사랑.”
이건 또 무슨 얘기냐는 듯 내가 Y를 쳐다보자 녀석은 말을 이었다.

“그 사낸들 ‘신 휴거’를 과연 믿었겠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다만 그는 자신의 아내가 ‘스스로 도망친’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었던 거지. 그건 너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가슴 아프게 하는 사실이니까. 다시 말하면 그 사내는 자신의 아내를 선인으로 남겨두기 위해서 스스로 순교를 택한 거야.”

내가 여전히 멀뚱멀뚱해 있자 Y는 자신의 견해에 좀 더 설명을 보탰다.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면 장애인 사내는 어쩌면 성불구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착한 여자라도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운우지정(雲雨之情)도 없이 앞으로도 평생 남편을 부양하며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여자는 때때로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때 여자한테 애인이 하나 생겼다. 애인은 원단을 구입하는 거래처 사람일 수도 있고 단골손님 중 누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도망을 치자니 장애인 남편이 너무 마음에 걸린다, 보살피는 사람이 없으면 남편은 굶어죽을 게 뻔하므로. 그래서 남편이 혼자서도 먹고살 만한 보험 하나를 들어두고는 화재를 위장 삼아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Y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얼추 그럴 듯했다. 하긴 그는 내공이 있는 소설가니까.
하지만 나는 사실 소설가의 추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변호사한테는 ‘소설적 환상’이 아닌 ‘현실적 송사거리’만이 관심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미련스레 큰돈을 남겨두고 죽음을 자초한 사내가 못마땅해 혼자서 구시렁거렸다.

“한심하기는. 명분이 실리만 할까, 장애인 주제에 3억이나 되는 거금을 그냥 두고 노숙자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할 건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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