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홍보영 인턴기자] 세밑한파가 불어닥친 30일 서울역 3번 출구에서 노숙인 담당 경찰관이 노숙인가 사용했다가 방치해둔 박스를 치우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30
[천지일보=홍보영 인턴기자] 세밑한파가 불어닥친 30일 서울역 3번 출구에서 노숙인 담당 경찰관이 노숙인이 사용했다가 방치해둔 박스를 치우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30

한겨울, 노숙인 담당 경찰이 바라본 ‘서울역 노숙인들의 삶’

기피 대상이던 경찰이 ‘도우미’로 인식되기까지 3개월 걸려

기저질환 앓는 노숙인, 코로나19에 치명적… “늘 긴장감”

[천지일보=홍보영 인턴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 사태. 세밑 한파가 시작된 겨울철. 서울 중구 서울역 3번 출구,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

침낭인지 이불인지 알 수 없는 물건이 종이박스와 뒤엉켜 한 곳에 모아져 있다. 분명 거리엔 사람들이 있고 이곳을 지나기도 했지만 눈길을 주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숨죽여 지켜본 곳에서 포착된 인기척. 이를 보고 안심하는 한 경찰이 있었다.

1년 전 서울역 파출소에 발령을 받은 뒤 줄곧 노숙인을 담당해오고 있다는 박아론(38, 남) 경사는 한파가 찾아온 30일에도 어김없이 노숙인을 살피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서울역 지하철 3번 출구에서 노숙인이 사용했다가 방치한 박스를 치우던 그는 “서울역 옆 롯데마트에서 사용한 박스를 노숙인분들이 가져와 쓴 것”이라며 익숙한 듯 재빠르게 정리해나갔다.

박 경사는 “노숙인 담당은 다들 꺼리는 업무라 내가 오기 전 1년 정도는 공석이었다”면서 “하지만 나는 자진해서 일을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상당히 어려웠다고 했다. 그 이유는 노숙인들에게 비친 경찰의 모습이 긍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노숙인들이 생각했던 경찰은 마치 학생이 학생주임을 싫어하는 것처럼 야단치고 간섭하고 벌금을 물리는 기피 대상이었다.

박 경사는 이런 인식을 바꿔보고자 처음에는 사복을 입고 노숙인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3개월쯤 지났을까. 그때부터는 거리 노숙인분들이 하나 둘 내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했다”면서 “그 뒤로는 노숙인분들이 나를 자신들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인식했고, 먼저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거나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경사는 “요즘 같이 추운 겨울이 되면 나이가 많거나 아픈 노숙인들은 갑자기 심정지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새벽 4시부터 거리에 나와 노숙인들을 살핀다”며 “생명이 위험한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긴급히 병원으로 이송한다”고 했다.

병원비의 경우 노숙인들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서울시에 청구해 지출한다는 게 박 경사의 설명이다.

[천지일보=홍보영 인턴기자] 세밑한파가 불어닥친 30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노숙인 쉼터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 한 노숙인이 들어가려고 대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30
[천지일보=홍보영 인턴기자] 세밑한파가 불어닥친 30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노숙인 쉼터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 한 노숙인이 들어가려고 대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30

코로나19가 유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저질환이 있는 노숙인이 감염될 경우 치명적일 수 있기에 박 경사는 늘 긴장감을 갖고 이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다.

만일 1명이라도 감염된다면 수십~수백명의 노숙인들이 감염 위험에 빠지는 것은 물론, 감염되지 않은 노숙인들도 보금자리를 잃고 또 다른 거리로 내몰려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노숙인들 가운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 관리가 더 까다롭다.

박 경사는 “지난해 이 근처에서 노숙인이 시민을 대상으로 ‘묻지마 폭행’을 한 적 있었다. 또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노숙인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욕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이런 노숙인은 서울시나 중구청에 전문 상담사를 연결시켜 상담을 받게 하고 병원에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간혹 치매에 걸린 노숙인도 발견된다. 박 경사는 “이들은 자신의 집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지문을 찍어 신원을 조회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노숙인들은 주소지가 없어 기초수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 경우 병원을 연결해서 병원 주소로 주소지를 옮겨 기초수급도 받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매달 4~5명은 치료받으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요양병원으로 보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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