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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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쉬나크(Aton Schnack)! 독일의 시인이다. 이 시인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1950년대 고등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제하의 수필로 인해서다. 독일문학을 전공한 김진섭 수필가에 의해 번역된 이 수필은 당시 문학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수필 속 몇 구절을 암송할 정도였고,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그 시절에 학교를 다닌 한국인이라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수필 제목은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되는 이 수필의 명문장이 인구(人口)로 회자, 전래되면서 안톤 슈나크 시인은 비록 독일의 압제자 히틀러에게 충성맹세한 자이긴 해도 그가 남긴 족적의 빼어난 예술적 작품성에서 보여지듯 시인은 당시 독일에서 짧은 산문의 대가로 알려져 있었다. 문학의 장르에 무관하게 시인이 일상생활에서 얻은 서정성이 강한 글로써 독일인뿐만 아니라 세계 독자들의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 낸 인물이었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논과 밭, 우울한 병실에 누워 있는 몸이 되었을 때, 돌아가신 아버님의 편지, 우리를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옛 친구……’ 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삶의 우수를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 나열되면서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구절이 반복적으로 제시돼 비록 수필이기는 하나 그 느낌은 마치 한편의 서정시를 읽는 듯한 묘한 기분을 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필자 기억에 또렷하고 의미 있는 것은 수필 내용 속에서 아버지가 손수 쓴 편지글을 사후에 아들이 찾아내고서는 부정(父情)을 생각하는 다음의 문장이다.

‘…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稚氣)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 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 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청소년기 아들의 치기어린 행동과 거짓말. 혹은 망나니짓들이 아비 마음을 한없이 불편하게 했다는 것인바, 세월이 흐른 후 아들은 그 편지를 보고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가 없으니 타들어 갔던 아버지의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어찌 보면 아버지로서 당연한 자식사랑의 고뇌일진대, 그런 동안에도 아들은 아랑곳없었으니 시인에게는 그것도 슬픔이라면 아름다운 슬픔이리라. 그러기에 시인이 일상사에서 느낀 슬픔은 때로는 개인의 가슴속을 깊이 후벼 드는가 하면 때로는 불현듯 스쳐 지나가기도 하는 하나의 풍경으로 남는다.

각설(却說)하고 2020년은 서글프기 그지없는 한 해다. 세밑의 지구촌에서는 코로나19 영향이 큰바, 유난히 우리사회에서는 그 병마와 더불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닥친 환난의 상처가 깊고 이웃 모두가 우울했다. 12월 들어 소상공인 매출은 반 토막이 났고, 자영업자들은 눈물의 폐업세일로 지새며, 취업자들의 대거 실직이 이어지면서 어느 청년은 100번째 이력서 제출에도 탈락했다는 비보가 들려온다. 취업이 어려워 지난달에는 ‘그냥 쉬었다’는 사람이 235여명에 이르렀다는데도 문 정권에서 임대주택 1시간짜리 이벤트에 4억 3500만원 들었다는 보여주기식 쇼로 서민 가슴에 피멍 들게 했으니 이 모든 게 국민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어찌 이것뿐이랴. 올해는 국민들이 힘들게 생활하는 판에 ‘검찰개혁’ 미명하에 정치판 망나니 권력자들만 신난 한 해였다. 별의별 꼼수가 다 있었으니,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등 꼭지가 덜 떨어진 검사 나부랭이를 승진시켜 권력 시녀화하고선 정의로운 검찰 공격의 앞잡이로 삼아 분탕질한 것도 모자라 엄연히 임기가 보장된 윤석열 검찰총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없는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문 정권은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가 뜻대로 되지 않자 위법적 징계위원회를 구성하고서는 ‘신의 한수’인양 착각해 ‘정직 2월’ 징계의 꼼수 전략은 전형적인 ‘내로남불’ 현상의 극치였고, 하는 일마다 무법천지가 따로 없었다.

2020년 한 해가 저무는 세밑의 날씨는 춥다. 예전과 같은 삼한사온을 기대하지만 기후변화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회억하노라면 올해의 세월 흐름은 야속하기 짝이 없다.

슬픔은 차례를 지켜서 오지 않는다 말했던가. 보건재앙보다는 권력의 치기와 억지 칼춤이 만들어낸 갈등으로 국민들이 힘들고 어렵게 지내는 동안 소소한 슬픔들이 줄을 이었으니 ‘우리를 슬프게 했던 것’들이 한없이 점철된 한해였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생명으로 아는 정의롭고 뚝심의 검찰이 있고, 또 며칠 전 서울행정법원의 윤 총장 징계 ‘집행정지 인용’ 결정에서 보듯 권력 눈치보다는 법리원칙과 소신의 재판관이 있으니 그나마도 든든한 우리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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